걷는 것은 자신과의 만남… 지리산길 녹색여행

2008년 11월 28일 | 녹색여행, 활동후기

 

“걷는 것은 자기 자신과의 만남입니다. 자신의 생명 평화를 완성하기 위한 행위지요. 걷는 것은 곧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내면의 소리를 듣고 내면의 소리에 충실한 삶을 살고 그 결과 내 삶에 생명과 평화를 흘러넘치게 하는 것입니다.”

도법스님의 말씀이다. “걷는 것은 자신과의 만남….” 이란 이 말씀에 난 공감 한다.


지리산은 내게 오르기만 하던 산이었다.

코스별로 일정을 정하고 마냥 시간에 쫒기 듯 오르기만 하던 산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지리산 품속에 있는 시간들은 …

해의 길이에 따라 머물 수 있는 시간도 달랐지만, 쫒기 듯 내려와야만 했던 아쉬움을 남겨두고 다음을 기약함에 만족해야 했던 산… 지리산…

그 산을 이번엔 마냥 바라만 보고 걸어봤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말…. 내게 지리산이 그러했다 ….

 


지리산 능선을 바라보며 녹색발자국을 내딛어 보았다

느림의 미학


매동마을로 시작되는 지리산길 2구간 1박 2일의 도보길….

잘 정비된 마을길과 농부님의 손길에 잘 정비된 논두렁길, 예전 우리의 할머니들이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눈물지었을 법한 고갯길, 휴경지가 되어 자연의 품속으로 되돌아가는 옛논길, 한없이 포근했던 지리산 숲길, 심한 가뭄에 갈증을 호소하던 강바닥의 강뚝길이 지금 눈앞에 아른거린다.

양지바른 비탈길 어느 이름 모를 영혼의 안식처에 서글픈 전설의 쑥부정이가 지나가는 이의 발길을 잠시 머물게 한다. 잠들어 계신 영혼과 한 다발의 쑥부정이… 무슨 사연일까….

한때 가지가 휘어지도록 열렸을 감들은 가느다란 실에 역이어 처마 밑에 달려 있고

높은 나무 가지 위에 남겨진 주홍빛 까치밥이 아름답기만 하다. 마을 어귀 무인 매점의 틀린 철자 메뉴판이 정겨웠으며, 짖은 주름의 어르신들의 반가운 인사가 따뜻했던 길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골목길 예쁘게도 쌓아놓은 장작더미는 구부정한 할머니의 겨울나기에 든든해 보였고 그 장작을 쌓았을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그 어떤 것보다도 어여쁜 모습이었다.

 


매동마을 고갯길을 넘어서

 

다랑이 논길을 따라 걷다

인연 …


옷깃만 스치는 것도 억겁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 했다.

서로 다른 타인들이 만나 1박2일 동안 같은 곳을 향해 같은 길을 걸었다. 약 14Km를 걷는 동안 안면부지의 나그네에게 선 듯 막걸리 잔을 내밀며 웃으시던 할머니의 넉넉함을, 마을 어귀 맛이나 보라며 선뜻 내어준 할머니의 꿀단지를 중심으로 수저하나로 서로 떠먹여 주던 참가자들의 모습에서 가족 같은 포근함을, 때를 알고 다음의 계절에게 선 듯 자리를 내어 주는 자연의 겸허함을 배웠다.

또 이 모든 분들의 자연에서 묻어난 평화로움이 부럽기 그지없었다.

부족함 없이 자신이 누리는 모든 것이 당연시 되어버린 현실의 아이들과 다름없는 여행 내내 투덜대던 초등학교 5학년인 나의 조카 현수

태어나 그렇게 오래 걸어 본적도 처음이었고. 그렇게 힘들어 본적도 처음이었을 것이다. 차로가면 안돼냐며, 티브이를 그리워하고, 컴퓨터 게임을 그리워했지만, 가족들 품을 떠나 낯선 이들과 홀로 한방에서 잠을 자는 첫 경험과 숟가락 하나로 돌려가며 꿀을 떠먹던 그 일을 더럽다기 보다는 서로 나눔에 마음 훈훈함을 잊지 못할 것이다.

언젠가는 현수가 게임기를 그리워하는 대신 자연을 그리워하는 아이로 자라나 주길 기대해 본다.

제각각의 참가 계기가 있었겠으나. 도시에서 태어나 문명의 이기 속에서 살던 나와 현수가 잠시나마 이런 분들과 함께 자연과 하나였음에 감사한다.


 

이모와 함께 온 현수… 등구재에서

 

 

창원마을에서 지리산을 바라보다

 

지리산길에서 녹색인연을 맺다

 

에필로그 …


지리산 길을 걸으며 감탄한 것은 자연은 스스로를 치유하는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사람의 손길이 닿는 곳을 벗어나면 자연은 그대로의 자태를 뽐낸다.

스스로의 겸손에 후대에 자릴 내어주는 생명의 소나무를 보았고. 사람이 농사로 파헤쳐 놓은 땅을 다시 품어 또 다른 나무와 동물과 바람에게 내어 주는 평화의 모습을 보았다.

나는 지금 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나…. 시간이 흐른 뒤… 우리의 후세에게도 아름다운 자연을 그대로 물려 줄 수 있을지 조심스레 걱정해 본다.

우리는 낮은 자세로 생명과 평화의 길로 자연을 대해야만이 자연은 우릴 허락할 것이고 우리와 공생할 것이고, 우린 또 다시 어여쁜 인연들을 만날 것이다.

 

                                                                                                       <눈마중달 녹색여행 참가자 백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