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물으며-야생동물에게- /녹색길라잡이 최명운

2015년 10월 29일 | 녹색소식, 참여

  안부를 물으며

-야생의 동물들에게-

 

녹색길라잡이 6기 최명운(사소한 밤나무)

발뒷꿈치가 발굽에서 멀어진 전설처럼 그 긴 시간 동안 바위를 타고 놀던 너희 부족을 생각해본다. 너희의 숲은 얼마나 치열하며 얼마나 향기로우며 얼마나 아름다운가. 서로에 대한 살기등등한 선제공격조차도 섭리가 되는 곳. 계절 따라 사랑을 하고, 자전처럼 제자리를 맴돌며 배설을 하고, 공전처럼 영역의 울타리를 감시하고, 잉여와 축적이 없이 배고픔에 늘 긴장하며 사는 너희의 숲은 우리들에게도 무척 경이롭다.

목숨이 있는 생물들이 터를 뺏기는 일이란 어떤 재앙인가.

너희의 속도에 뒤지고 너희의 시각에 밀리고 너희의 청각을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에게는 총이 있다. 총과 욕망으로 최고의 포식자가 된 인간. 네발에서 두 발로 일어선지 수 백 만년이 흘렀지만 산과 들과 강을 그리워하는 인간에게도 소멸되는 기억 같은 야생성이 있다. 경계 바깥에서 물끄러미 너희의 서식지를 바라보면 우리는 한없이 너그러워지고 편안해진다. 시월의 숲은 꽤 한적하고 인기척에 놀란 것 마냥 툭툭 잎이 떨어진다.

고라니2@김현태-14고라니02

<고라니, 김현태>

천둥도 치고 가뭄도 있고 홍수도 나지만 산불처럼 너희를 놀라게 하는 인간의 점령과 약탈에 의해 사라졌다는 너희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진상을 밝히고픈 사람들에 의해 횃불이 들려졌다.

인간이 너희에게 다가가는 두 가지 상반된 목적은 사냥과 보호인데 너희의 속도를 추월하는 활과 화살이 너희를 추격했던 그 옛날의 인간에게는 사냥의 목적이 너희와 비슷했었는데. 아득하게 먼 옛날 기근과 공포로 제 터에서 살지 못하고 유랑을 떠나버린 인간의 원시 마을처럼 터가 파헤쳐 길목이 끊기고 숲이 베어져 허연 그루터기들이 웅덩이처럼 널브러진 너희의 마을을 보면 인간의 목적을 외면하게 되고 인간의 풍요가 원망스러워진다. 눈빛이 부딪히는 만남이 없어도 담장 너머 누군가 살고 있음을 당연히 믿듯이 산과 숲과 강의 가장자리에서부터 너희가 살고 있음을 상기 한다.

너희도 해와 달과 별에서 시작한 신화가 있는가.

삵 김현태

<삵. 김현태>

안부를 묻기 위해 너희의 꽃잎 같은 발자국과 열매 같은 배설물을 따라 가다가 보면 교활하고 야비한 올무의 궤적을 만나게 된다. 공존의 이유를 되새김질 하게 하는 인간의 물건이다. 너희 말초의 뿔과 발굽으로 허공에 그어 댄 자국들이 안개처럼 스멀거리는 인간의 독기 서린 시선과 숨소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지워진다. 너희에게도 선지자가 있는가. 지혜로운 늙은 추장이 있는가. 이제 점차 인간들의 도시 빈민처럼 외곽으로 꼭대기로 밀려나게 될 수도 있으니 그럴 때는 너희 지혜로운 늙은 추장을 따라 너희가 서로 주고받는 부대낌이 방해 받지 않는 안전한 곳으로 떠나라. 떠나서 계속 살아가라. 우리의 존엄한 문명과 너희의 존엄한 야생이 공존 공생하여 인간의 의도 밖에서 너희가 영원히 순환되길 바란다.

체감과 교감 없이 정보와 인식에 의지한 앎과 반성으로 생태계란 무엇인가란 물음을 가지고, 멸종 위기란 말에 위기를 느끼며, 다양성이 사라진다는 그 사라짐에 불안을 느낀다. 생명의 질서와 인간이 지키고 해결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우주적 질서라는 차원에서는 순응을 생각하게 되고, 인간의 행동에 대해서는 불신과 초조함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야생의 반짝이는 눈빛들이 숲 속 곳곳에 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