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자라는 아이들(와숲교사 백마리)

2015년 3월 27일 | 녹색소식

 숲에서 자라는 아이들

봄기운이 돌고 초목이 싹튼다는 절기인 우수에 동산에 올랐다. 겨울눈을 달고 있는 나무가 여기저기 새싹을 내려고 삐죽대는 모습이 겨우내 적막했던 숲속을 생기 있게 만들고 있었는데, 그 풍경을 보는 내 가슴 밑바닥에서도 스멀스멀 뭔가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것은 겨우내 잊고 있었던 설렘이었다. 지지난해, 이렇게 봄기운이 올라오고 풀꽃들이 꽃망울을 올릴 즈음 만났던 열 세명의 아이들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 꾸러기들은 이 봄기운을 어떤 마음으로 맞이하고 있을까?

2012년부터 녹색교육센터의 와숲(와글거리며 생기가 넘치는 숲) 숲교사로 참여하며 해마다 지역아동센터 저학년 아이들을 숲에서 만났다. 만남 횟수는 적게는 6회에서 많게는 14회까지. 그동안 여러 센터의 아이들과 만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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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난해에 만난 열 세명의 아이들. 토끼풀꽃 반지로 왕자님 놀이를 즐기던 00. 징징 울다가 손가락 위로 올라온 개미에 정신을 뺏겨 울음을 뚝 그치던 00. 납작한 돌멩이를 큰 북 삼아 숲속음악회를 즐기던 00. 쭉정이 도토리에 물을 부어 싹을 틔울 거라던 00. 곤충관찰통을 신주단지 모시듯 들고 다니던 00. 버려진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새둥지 짓기에 여념이 없던 00. 솔잎 장판에 매실 저장고를 만들어 포근한 개미집을 만들던 00. 철쭉꽃에 진짜 독이 있나 없나 먹어봐야 한다던 00. 풀꽃 액자에 제비꽃을 초대하던 00. 냉이꽃을 입에 물고 냠냠 맛있다던 00. 떨어진 개나리 꽃잎으로 헬리콥터를 만들어 날리던 00. 진달래와 개나리는 환상의 조합이라던 00. 노란 민들레 꽃밭 옆에서 이어달리기에 열심이던 00.

그 가운데 00이는 유독 생각나는 아이이다. 걸핏하면 친구들과 주먹다툼을 하거나 숲놀이를 방해하기 일쑤여서 따로 도우미 선생님을 붙여놓던 아이였다. 첫날 동네숲 산책길에서 죽은 토끼를 만났을 때 그것을 맨손으로 번쩍 들어 올려 모두를 당황시키고, 돌멩이 밑에서 잡아온 개미와 벌레들을 손으로 짓뭉개는 일이 예사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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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00이가 숲활동에서 곤충관찰통을 맡으면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숲활동에 방해되지 않게 조심스럽게 개미를, 무당벌레를, 달팽이를 담아 아이들에게 보여주곤 다시 제자리로 보내주었다. 어떤 날은 관찰통에 담아왔던 꿀벌이 꼼짝을 안한다고 걱정을 하다가 꿀벌은 뭘 먹냐고 물어왔다. 꽃꿀이나 꽃가루를 먹는다는 말에 이미 다 져내려 찾기 힘든 꽃을 찾아다니다가 용케 피어있는 철쭉꽃 한 송이를 찾아 와선 그 꽃잎 위에 꿀벌을 살포시 내려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일도 있었다.

숲에서의 다양한 경험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그리고 동건이의 마음을 초록빛으로 물들여 놓았던 것을 기억한다. 다시 올해 봄도 설렘으로 맞는다. 올해 봄 숲에선 어떤 아이들을 만나게 될까?

* 위의 글은 녹색교육센터에서 녹색교사(와숲, 어린이절기여행교사)로 활동중인 백마리선생님(자연이름, 땅강아지)이 월간 작은것이 아름답다 3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