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길라잡이] 숲을 느끼는 온전한 감각을 깨운 설악산 생태여행

2014년 10월 1일 | 녹색교사 양성교육, 녹색길라잡이, 녹색시민교육, 활동, 활동후기

[녹색길라잡이 양성과정 9월 26일~28일 설악산 워크숍, 생태여행 후기]

흔적, 남기는 것 혹은 남김없이 사라지는 것

 

김태호(꽃달별)

 녹길설악산 004

녹색길라잡이 설악워크숍 배낭을 꾸리며 빈도시락통, 개인컵을 가져가 본것은 처음이다.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서먹하지만 서로에게 배려하고 살뜰히 챙겨주시는 동기생님들과 떠나본다. 최현명선생님의 야생동물 그림솜씨에 놀랐고 양경모 선생님의 자연의 소리와 곤충소리, 새소리를 말로 풀어내시는 감성에 놀랐다.

녹길설악산 008

 

녹길설악산 009

녹길설악산 018

산양의 영혼을 닮은 박그림 선생님을 따라 사람의 흔적이 많지 않은 곳으로 찾아 들어간다. 사람의 흔적보다는 벌레의 흔적 동물의 흔적 을 찾아보는 시간. 수북히 쌓인 낙엽 아래에서 얼싸 안고 즐거워 보이는 검털파리벌레들. 경치 좋고 바람 선선히 부는 곳에서 중요한 볼일을 보시는 산양.

녹길설악산 036

야생동물이 된 것 마냥 네발로 기어 올라본다. 네발을 써본 것이 참 오래간만이다. 네발로 엉금엉금 기어 조금 쉴만한 곳에는 산양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있다. 바로 똥 이다. 화장실이 훌륭하다 못해 경이로운 풍경인데 산양 이 녀석이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보고 만나는 것 들은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오르기 힘들 것 같아 부럽지는 않다.

사본 -1412143134081

사본 -1412143142641

박그림 선생님은 하루종일 산양의 흔적을 쫒아 다닌다. 한 사나이의 외로운 짝사랑이…짝사랑하는 산양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 참으로 애절하기도 경이롭기도 부럽기도 하다.

사본 -1412143183191

다시 네발로 기어내려 올 시간, 간혹 깨진 병으로, 떨어진 장갑으로, 비닐봉투로, 버려진 인간의 흔적이 보인다. 산양의 흔적은 훈훈한 마음 들지만 인간의 흔적에 씁쓸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본 -1411915414633

있어야 할 곳이 아니기에 씁쓸한 기분 드는 것은 아닐까? 커다란 인공 구조물도 작은 휴지조각도 인간의 억지 흔적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사람도 누군가에게 간섭 당하면 기분 상하고 화를 내고 자신의 뜻대로 하고자 한다. 하물며 여러 생명이 살고 있는 자연에게 인간이 간섭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될 것이다.

 

숲을 느끼는 온전한 감각을 깨운 설악산 생태여행

 

이진호(숲품)

 

추분을 막 지난 설악의 바람과 햇살은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따듯하고 포근했다. 날씨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날에 그동안 느낄 수 없었고 볼 수 없었던 감각을 깨우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아마도 심봉사가 눈을 뜨고 딸 심청이를 보았을 때 이런 기분이었으리라.

녹길설악산 150

비법정로로 들어서고 몇 분을 더 걸어가니 등산객들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비로소 ‘그들이 사는 세상’에 들어섰다. 사람은 숨기지만 동물은 드러내는 것, 바로 배설물이다. 가장 먼저 만난 족제비 배설물을 시작으로 담비, 쥐를 잡아먹은 삵의 배설물을 만났다. 경이로웠다. 산에 야생동물이 산다는 것은 외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인간의 산만 다닌 것일까, 그들의 세상에 들어 왔다는 기분에 조심스러웠지만 가슴이 뛰었다.

사본 -1412143152864

바람소리 이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리 없는 상태를 일컷는 말로 ‘적막하다’가 있지만 설악은 ‘고요하다’라는 말이 훨씬 어울렸다. 아름다운 침묵이었다. 우리들의 발소리와 진동이 피해는 가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그들의 흔적을 찾으면서 우리의 흔적은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는 그들의 세상에 들어선 객이었기 때문이다.

녹길설악산 164

이번 워크샵은 우리가 주인이 아니라 ‘객’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 의미 있는 출발점이었다. 또한 새로운 감각을 깨우는 계기도 되었다. ‘소리’교육을 통해 그동안 듣지 못했던 소리를 듣게 된 일이다. 그동안 없었던 소리가 아니라 들리지 않던 자연의 소리가 비로소 들리기 시작했다. 귀뚜라미가 울고 새가 노래하여 풍요롭고 아름다운 숲의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영어를 배우고 나서 낯선 외국인의 ‘헬로우’가 나에게 다정히 인사하는 말임을 알았던 때처럼 반가웠다.

녹길설악산1 003

이제서야 진정한 의미에서 숲에 간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소나무처럼 흔하고 큰 나무만 볼 줄 알다가 점차 작고 여린 풀과 야생화가 보였다. 조금 더 다양한 식물들과 하늘을 나는 새들이 보였다. 그리고 이제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온전히 숲을 느끼는 감각을 모두 깨웠다.

녹길설악산 067

그렇다. 숲은 이런 곳이다. 다양한 식물과 동물, 생명과 무생물이 어우러진 건강한 생태계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설악이 더욱 풍요로와 아름답기를, 그 풍요로움이 사람이 아니라 주인인 그들의 날숨과 들숨으로 완성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