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세상으로 들어가기 앞서 /설악녹색연합 박그림

2014년 9월 2일 | 녹색소식, 참여

 

짐승세상으로 들어가기

1. 들어가기 앞서서

우리가 자연에게 올바로 접근하고 또 당황하지만 않는다면, 자연은 절대로 우리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산에 들어간다는 것부터 이미 다른 세상으로 가는 일이다. 풀꽃세상, 나무세상, 짐승들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기 위해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은 아니지만 꼭 갖추어야 할 것이 침묵과 사랑이다. 불쑥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면서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함은 물론이고 그들을 귀하게 여기려는 마음이 있어야 그들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짐승들의 세상은 이제까지 우리들의 간섭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고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도 매우 드물다.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멀리 몸을 감추어야 하는 짐승들의 애처로운 모습은 밀렵으로 죽어간 수많은 짐승들을 떠올려 본다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다른 목숨을 끊어 스스로 건강해지겠다는 생각부터가 반 생태적이지 않은가. 그렇게 해서 얻은 힘을 어디에 썼는가?

짐승들에게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 생태적인 마음이 갖추어지고 행동으로 옮겨질 때 그들과 더불어 사는 세상이 마련될 것이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살아가는 아름다운 날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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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법 커지고 있다. 짐승들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인가? 정말 보호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일까? 무엇으로, 어떻게 보호한다는 것인가? 짐승들을 위해 우리들이 할 일은 그들이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도록 간섭하지 않는 일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해주기 위해서 그들의 생태를 알아야 하고, 그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아야 하고,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들이 그들을 위해 하는 일을 따져 보자. 먹이주기운동이 꼭 해야 하는 일인가? 뿌려놓은 먹이를 제대로 먹은 곳이 있는가? 우리들 생각대로 벌이는 일에 짐승들이 함께 하기는 어렵다. 먹이를 가져다 줄 곳에 어떤 짐승들이 사는지? 겨울철에 먹이가 정말 부족한지? 부족하다면 어떤 짐승들이 먹이가 부족한지? 어떤 먹이를 주어야 하는지? 꼼꼼하게 따져 보고 일을 벌여도 늦지 않다. 봄철이면 얼었다 녹은 감자가 썩어나가고, 4-500kg 나가는 비육우가 먹어야 되는 배합사료가 뿌려진 것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배합사료에 섞여 있는 항생제가 짐승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따져 보았는가?

짐승들의 발자취를 더듬는 일은 참을성과 끈기를 필요로 한다. 기다려야 하고 또 기다려야 하는 일이다. 발자국 하나에도, 똥 한 무더기에도 가슴 설레며 그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고 그들이 남긴 흔적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흔적 하나하나에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새끼는 잘 자라고 있는지? 아픈데는 없는지? 멸종의 길을 걷고 있는 그들을 위해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사랑으로 바라보고 사랑으로 다가서고 사랑으로 보듬어야 하는 일이다.

(설악녹색연합  박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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