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들과 공존해야 하는 걸까? [야생동물교육 길라잡이 단기과정 1강]

2009년 1월 29일 | 야생동물길라잡이, 활동후기

    

야생동물교육 길라잡이 단기과정

– 1강 최현명 선생님 강의 후기


왜 그들과 공존해야 하는 걸까?


박경화


  사람의 마을에서 짐승이란 소나 개, 닭, 염소처럼 사람에게 잘 길들여져 농사일을 돕거나 고단백질을 제공하는 먹을거리였다. 그리고, 장에 내다팔면 쏠쏠한 돈벌이도 되었기 때문에 먹이 챙겨주고 우리를 튼튼하게 만들고, 새끼나 알을 낳을 때면 임산부 못잖은 정성을 들였다. 이런 집짐승 외에도 짐승들이 있었다. 저 깊은 산 어딘가에서 눈빛을 번뜩이고 있는 맹수들, 가까이 가서도 안 되고, 마을로 내려와 사람들을 헤치는 일이 없도록 단단한 울타리를 쳐야만 했던 야생동물이 있었다.

 

  예전 사람들에게 이 야생동물은 농작물을 망치는 해로운 짐승이었고, 고개를 넘던 건장한 사내를 단숨에 쓰러뜨릴 수도 있는 맹수였다. 그래서 엽총을 들고 산으로 올랐고, 올무와 덫을 놓아 보신용으로 포획하려고 애를 썼다. 또, 농사지을 때 맹독성 농약을 뿌려 땅과 물이 오염되고, 울창한 산을 밀어내고 아파트를 짓고 도로를 닦고, 온갖 휴양시설이 들어서면서 야생동물의 보금자리가 줄어들자 그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말았다.

 

  왜 지금에서야 야생동물에 주목하는 걸까? 야생동물에 관한 자료를 뒤적이며 가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동물원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찾아든다. 동물에 대한 어린이 책도 다양하고, 애완동물 시장은 점점 더 규모가 커지고 있다. 또, 곰과 산양을 넘어 따오기와 두루미 같은 야생동물을 복원하려는 기관들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야생동물의 상황은 어떨까? 산마다 온갖 시설물이 들어서고 주말마다 시끌벅적한 등산객이 넘쳐나고 있다. 야생동물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그들이 사는 공간에는 아무런 배려가 없다.

 

  한반도의 포유류는 123종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바다동물을 제외하고, 북한에서 살고 있는 종을 제외하고, 남한에서 이미 절멸된 동물을 제외하면 우리와 공존하는 포유류는 58종이라고 한다. 그러나 냉혹한 먹이그물 속에서 경계심이 많은 야생동물은 좀체 모습을 드러내질 않는다. 우리가 숲에 들어가서 발자국과 배설물 같은 흔적으로 만날 수 있는 야생동물은 겨우 16종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삵과 너구리, 오소리, 담비, 족제비, 쇠족제비, 산양, 노루, 고라니, 사향노루, 멧돼지, 멧토끼, 청서, 다람쥐, 고슴도치, 두더지 정도이다. 이 중에서 담비와 산양, 사향노루는 그들을 찾아다니는 야생동물 전문가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경계심이 많은 탓도 있지만 그만큼 개체수가 적고 멸종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강의를 들으며 백두대간 어느 자락으로 현장조사를 갔을 때, 녹색순례 길 떠났을 때, 또는 혼자 산행을 했던 여러 날을 생각했다. 다행이 나는 야생동물의 발자국과 배설물, 그들의 영역표시를 여러 차례 만났고, 실제 야생동물을 만난 적도 몇 차례 있었다. 그 장소와 함께 있었던 사람, 그 때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렇게 야생동물을 만나는 일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을 만큼 여전히 흥미진진한 일이다. 

 

 

  그렇다면 왜 야생동물은 우리와 공존해야 하는 걸까? 사람을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들이고, 한해 농사를 망쳐놓는 해로운 존재이고, 이미 멸종을 맞아 몇 마리 남지 않았는데 왜 야생동물 보호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까? 지난해 여름에도 야생동물 전문가인 최현명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다. 그 때 선생님은 이런 설명을 해 주셨다.

 

  호랑이나 표범 같은 상위 동물 한 마리가 숲에서 살아 있으려면 아랫단위의 더 많은 작은 동물들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작은 동물들이 유지되려면 다양한 풀과 열매, 벌레들이 숲에서 어우러져야 한다. 이 작은 생명들이 숲에서 살려면 오래된 나무들이 튼튼하게 서서 보금자리가 되어야 하고, 흙이 건강하고, 물도 맑아야 한다. 그럼, 공기도 맑은 법이다. 다양한 생물종들이 어우러져 산다는 것은 그 땅이 그만큼 살기 좋은 곳이라는 뜻이고, 사람들에게도 살기 좋은 곳이 된다. 결국 우리 모두가 자연의 질서에 잘 어우러져 공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저 깊고 푸른 숲에 나와 같은 따뜻한 피를 가진 짐승들이 봄꽃의 향기를 맡고, 여름 그늘에서 쉬고, 눈밭을 어지럽게 뛰어 다니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뛰게 한다. 어쩌면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야생동물의 현실은 사람들의 미래를 비추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좀 늦었지만 지금 우리가 야생동물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