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O야! 철원에 두루미 보러 가지 않을래?”
그 어느 때와 같았던 하루, 친구와의 통화는 참으로 뜻밖이었습니다. 두루미라니…? 저는 순간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두루미라면 그 긴 주둥이로 음식 대접하다가 여우랑 다툰 대형조류..아, 아니 우리 고전문학이나 동화책, 도자기나 회화 등에 자주 등장하는 길고 우아한 새 말인가?
..아쉽게도 저에게 두루미에 대한 이미지는 이 정도였습니다. 참새나 까치, 비둘기처럼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새가 아니어서 그랬던 걸까요? 상상 속의 동물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저에게 친구의 제안은 무척 흥미롭고 신선했습니다. 친구의 따뜻한 말솜씨와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로, 저는 교보 다솜이 철새 먹이주기 행사에 자원봉사 겸 참여하게 됐습니다.
이른 아침, 저 멀리 부산에서 가까운 서울에 이르기까지, 행사에 참여하시는 가족분들이 전국 곳곳에서 혜화로 오셨습니다. 그분들 얼굴에 피어난 기대감과 흥분감이 제 얼굴에도 나타났는지 문득 궁금하네요. ^^
저희가 향한 곳은 가장 많은 두루미가 찾아온다는 강원도 철원군. 그것도 비무장지대 가까이에 있는 철원평야입니다. 넓게 펼쳐진 풍요로운 평야가 예로부터 한반도 중부의 주민들을 먹여살리며 동시에 다양한 철새들의 훌륭한 먹이 공급지가 되어왔습니다. 듣기론 이 평야에서 떨어진 곡식낱알로 철새는 물론 수많은 산짐승들이 겨울을 날 수 있다니, 철원평야의 중요성이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 철원기념물보호센터의 김수호 선생님의 (철원 쌀을 예뻐해달라시던)말씀이 쌀밥을 먹을 때마다 생각나겠지요~ 🙂
우선 버스에서 처음 내려 도착한 곳은 철원자연생태학교. 운영하시는 가족분들 소개와 함께 두루미를 포함 다양한 철새에 대해 비디오 시청자료를 보게 됩니다. 여태까지 두루미하면 하얀 얼굴에 빨간 눈을 가진 녀석만 알았었는데…재두루미와 흑두루미라는 것도 있군요!, 아하~ 하면서 저는 두루미의 매력에 한 발 더 가까이 빠져듭니다. 화면 속의 두루미를 실제로 볼 수 있을까 바람도 들구요.
참. 그리고 독수리를 보러 가기 전, 가족 분들이 서로서로 얼굴을 익히는 소개시간이 있었는데요, 두 가족이 한 쌍이 되어 동물 애칭으로 지어주는 방법, 너무 재밌고 기발했습니다. 무슨 이름이 잘 어울릴까, 하며 아이들 못지 않게 두 눈을 반짝이시던 부모님들 표정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어쩐지 동물이 좀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순간이라고 할까요?
우선 점심을 먹기 전에 1호차 가족분들과 함께 독수리를 보러 갔습니다. 독수리, 흔히 '썩은 시체를 먹는다'라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 독수리는 절대 절대 썩은 시체를 먹지 못한다고 합니다. 썩은 시체가 품은 독은 인간은 물론 독수리에게도 매우 치명적입니다. 독수리는 다만 '죽은 시체'를 먹을 뿐이지요! 잊지 않도록 머릿속에 꼭꼭 저장한 뒤 보호센터에서 제공한 먹이를 뜯는 독수리 무리를 봅니다.
저희가 너무 가까이 왔는지 수많은 독수리 떼가 하늘을 메우며 날아다니더군요~ 왜 밥 먹을 때 온 거냐, 우우- 하는 원망의 소리가 들리는 듯도 싶지만 살짝 모른 척하며 그들을 바라봅니다. 바람을 타고 푸른 하늘을 유영하듯 날아다니는 그들의 검은 날개짓에는 오랫동안 접하지 못했던 시원함과 담대함이 들어있습니다.
바라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한적한 기분에 젖어드는데 웬 훈훈한 분이 독수리와 물새에 대해 설명해주십니다. 누굴까? 곧 녹색교육센터분들이 오늘 운이 정말 좋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렇게 물새박사님이신 이기섭교수님을 만났으니까요~. 꼼꼼하고 자세한 설명 들은 뒤, 저희는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을 먹으러 갑니다. 철원쌀로 지은 넉넉한 점심 한 상에 배가 수북이 부릅니다.
이제 배도 찼으니 철새의 꽃인 두루미를 보러 갑니다. 민통선을 지나 철원평야로 들어서며 저도 모르게 창밖을 보며 두리번거려봅니다. 왜 아직 안 보일까요? 김수호 선생님의 두루미 가족을 찾아보시라는 말에 안 좋은 눈을 이리저리 굴려보지만 보이지 않습니다. 이미 다 떠난 걸까? 살짝 섭섭한 감정이 들 무렵, 옆에서 팀장님이 외치십니다.
” 저기, 11시 방향에 두루미 한 가족이 있어요!”
가족 단위로 날아와 음식을 구하는 두루미. 부모로 추정되는 1.5m 정도되는 큰 두루미 2마리와 그보다 훨씬 등치가 작은 두루미 새끼.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면 목을 쭉쭉 빼며 야, 튀자!(?)하고 신호를 보내기 때문에 멀리서만 지켜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좋더군요. 두루미는 더 이상 상상 속의 동물이 아니었으니까요. 하얗고 까만 빛의 은은한 깃털과 우아한 몸의 곡선, 거기에 쭉 빠진 다리까지. 왜 그리 우리나라의 시나 회화에 단골 등장 손님인지 알 거 같습니다. 보고 있자니 천년만년 살아갈 듯한 그들의 분위기에 저도 금방 매혹되었으니까요.
그 뒤로는 두루미 가족이 종종 보였습니다. 다행이 아직도 남아 이곳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멸종 직전에 있는 그들이 이 철원평야에서 숨쉴 공간이 있다는 게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멸종위기동물 1급에 올라와있는 두루미들, 그들을 위해 우리는 꽁꽁 언 평야에 발을 내디딥니다.
서로서로 먹이를 주겠다고 몰려드는 아이들의 고사리 손에 가득가득 먹이를 담아줍니다. 아이들과 부모님은 평야를 달려 한 움큼씩 먹이를 쌓아줍니다. 두루미는 하루에 약 6천개의 낙곡을 먹아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흩뿌리지 않고 일부러 모아서 주어야 합니다. 흩뿌리면 두루미가 주어먹는데 훨씬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이 많이 드니까요!
냐옹이 모자를 쓴 아이부터 지그시 나이드신 할머님까지. 우리는 두루미를 비롯해 이 평야에서 먹이를 찾아다닐 동물들을 위해 곡식을 남겨주었습니다. 직접 먹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조금은 아쉽지만 저번에 두고 왔던 곡식들이 거의 없어진 것으로 보아 잘 먹었다는 거에 더 큰 안도감을 얻었습니다.
그 뒤, 철원천연기념물보호센터를 들러 구조된 새들과 동물들을 보는 것으로 오늘 교보 다솜이 행사가 마무리 됐습니다. 계속 일정이 짜여져 있어 쉴 새 없이 움직였지만 차로 움직이기에 그리 고단한 느낌은 없습니다. 그래도 오늘 하루 내내 긴장했던지 집으로 돌아와 푹 늘어졌지만요. 하지만 이건 기분 좋은 피로라 생각됩니다.
두루미, 아직도 상상 속의 새인가요? …만약 멸종된다면 정말 그리되겠지요. 내 아이들에게 두루미 사진을 가리키며 이런 새가 있었다고, 서글프게 말하겠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두루미는 엄연히 살아숨쉬며 우리나라에 겨울을 나기 위해 먼 북쪽에서부터 날아오는 철새입니다.
분단의 아픔이 남긴 상처는 비무장지대를 만들지만 뜻밖에 결과도 낳았습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철저히 보존되어 오던 각종 동식물과 자연자원들이 바로 그것이지요. 그러나 요즘 이 지역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바, 두루미를 포함한 멸종 동식물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이 행사가 더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요.
글을 마치며 두루미가 현실 속으로 들어와 있음을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느낍니다. 하루 너무 좋은 경험을 할 기회를 주신 녹색교육센터와 철원천연기념물보호센터 여러분, 그리고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 제 사소한(?) 질문에도 열심히 답해주신 이기섭 박사님과 사모님, 김수호 선생님까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