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길라잡이 현장교육_설악산 첫날 릴레이 실내강의 후기

2008년 8월 31일 | 야생동물길라잡이

하늘색 초록색 숲옷감 여미시는 설악산 어머니의 우직한 어깨 위로 구름이 지난다. 지리산이 어머니 치맛폭 같았다면, 내설악 가장 내밀한 이 곳은 산양을 품고 있는 설악산 어머니의 저고리 같은 곳이다. 두 시간을 걸어 올라오는 백담사 입구, 아직 비는 한 두 방울이었지만 비를 예감한 산숲은 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저녁예불을 알리는 스님이 울리는 나무물고기, 목어도 소리없는 구름을 자꾸만 피어올리고

 

어둑해지는 절방 안에서 작은뿔 박그림 선생님의 슬라이드 강의가 시작된다.

 

복원서식지가 아닌, 오랜 옛날부터 살아온 산양의 산. 그러나 지금은 거의 마지막 남은 보호서식지의 중심이기에 더 소중한 설악산. 설악산어머니와 산양형제는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아름다움과 아픔의 운명을 같이하고 있었다. “하루 만명의 등산객이 찾아옵니다. 여러분 집에 날마다 백명씩 손님이 찾아오는 셈입니다. 입산예약제가 정착되야겠지요. 그리고 굳이 설악산에 오지 않아도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합니다.”
초록창틀도 꺼지고 밤이 깊어지면서 빗소리도 깊어지니, 내일 저렇게 산양의 쉼터를 방문할 수 있을 가능성도 점점 희박해지고 있지만, 작은뿔 맏형제로부터 설악산과 산양을 만나고 있었다. 내친김에 설악너머 비무장지대 고진동계곡과 러시아 라죠브스키 보호지구와 알래스카까지.

 

뒤이어 야생동물 수의사 김영준 님의 강의. 우리나라 사람만 구글어스의 중심에 한반도를 두고 찾는 건 아닐지 모른다. 지구를 여행하는 야생동물들 특히 철새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중간기착점이자 오아시스 같은 정거장이자 삶터이다. 아, 외래종이니 침입종이니 하면서 묘하게 민족의식과 결부시켜 생물종을 대하는 자세도 잘못된 것이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우리는 수입만 하는 게 아니라 수출도 하니까.

 

 

지구, 그리고 남한, 그리고 수도권, 그리고 작은 동식물들, 그리고 더 작은 동물체 바이러스까지, 김영준 수의사님이 보여주는 지구. 그리고 지구 가이아를 유지하는 세가지 다양성의 지지대. '유전적 다양성, 종 다양성, 서식처의 다양성'

 

최근 발생한 인수공동전염병들의 사건일지를 표시하는 점들이 점점 옮겨가며 퍼지는 것을 보여주시면서, 이것이 새만금 간척사업이나 태안기름유출사건 등 최근 인간들이 저지른 서식처 파괴에 원인이 있음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이를테면 새만금에 서식처를 줄여놓고 종다양성을 바라는건 말이 안되는 거죠.”
더구나 새만금을 찾아오던 수많은 동물, 특히 조류들이 이제 다른 인근 지역으로 옮겨가 AI(고병원성조류인플루엔자)라도 걸린다면, 그건 종의 멸종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현실. AI가 철새가 원인인양 방송에선 떠들지만 실은 인간의 집약산업환경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너구리 광견병같은 밀도우점성질병도 결국 서식처를 좁아들게 만든 인간에게 그 원인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폭발적인 이동은 가축이나 야생동물의 교역과 밀수도 그에 한 몫하고.. 더구나 신상전염병들 – 에이즈, 사스, AI, 광우병과 같은 신종바이러스는 80% 이상이 인수공통전염병, 즉 동물에게서 인간에게로 옮기는 병이며 대부분 걸리면 죽는다는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인간이 원인 제공하고 야생동물을 매개로 다시 인간에게 그 피해는 돌아오고 있었다. 멸종의 운명도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영준님의 말대로 어느 동물이냐 어느 철새가 원인이냐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엉뚱한 마녀사냥식 야생동물탓을 하고 있었던 거다. 진짜 범인은 '미필적고의'를 저지르고 있는 인간.
새만금 방조제 공사 전후의 이 사진을 나란히 보여주며 읊조리시는 한마디 “단순화 속에 무슨 생명이 있겠습니까?”

 

다친 야생동물 사례 사진도 보여주며 수의사로써의 경험도 들려주셨다. 숲이 반사된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힌 새들. 머리가 작고 눈이 큰 새들은 머리를 부딪히며 뇌진탕과 함께 동공이 망가져 버린다고 한다.. 이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방법도 소개해주셨다.

 

비닐봉지를 쓰지 않는 것도 야생동물이 당할 수 있는 치명적인 사고를 줄일 수 있는 중요한 실천이라는 사실도.

 

야생동물수의사라는 예사롭지 않은 직업을 가진 김영준 님과 한집살림을 하고 계신 황윤 감독. 그녀 또한 야생동물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흔치않은 직업.
여는마당 때 함께 길의 윤리를 생각케 한 영화 를 만든 황윤 감독은 “이제 만물이 소수자 입니다” 라고 말한다. 팔팔이처럼 로드킬을 당하고 있는 야생동물들..”이들이 효순이 미순이와 다를 것이 무언가. 희생되고 짓밟힌 생명들, 소수, 약자. 인간은 울어준 이라도 있었지만 이 야생동물들은…” 그들을 위해 울어주고 대변해주는 이였다. '대상화'하지 않으면서 영화를 찍기는 어려운 일이겠지만 야생동물을 무책임하게 대상화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려 하고 있는 이다.

 

야생동물 3부작의 1부로 일컬어지는 영화은 슬픈동물원에 대한 이야기다. 아이들이 가장 먼저 동물을 만나게 되는 동물원은 오히려 인간중심적인 시각을 강화하고 있다는 고발. 아이들 교육을 위해 간다지만 인간이 마음대로 다른 종을 가둘 수 있다는 걸 가르치는 반교육적인 장소라며, 본래 동물원은 '현대판 노아의 방주'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호소력 짙은 황윤 감독의 눈빛이 야생동물을 대변하는 샤먼처럼 느껴졌다. “야생동물이 괴수처럼 묘사되는 영화들은 야만과 야생을 헷갈려하는 것이며 오히려 문명이 야만이다.” 애완이 아니라 반려동물이라는 것. 자연다큐에서조차 ('전지'에 가까운 듯) 인지적 인간은 동물을 자연관찰적인 지식의 대상으로 보고 있으며, 또는 ('전능'한 듯한 착각?) 보호의 대상으로 동물을 대하고 있다는 것. 매체를 통해 내 눈을 통해 바라보는 동물들. 거꾸로 야생동물들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 지구 가이아의 경계없는 눈으로 볼때 인간의 시선이란게 얼마나 좁은 눈을 하고 있었는가 무릎을 치게 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알약을 먹고 난 기분이랄까.
에 나왔던 크레인을 'TV동물농장'에서 찍어 내보낸 적이 있는데 귀여운 것도 모자라 억지로 우스꽝스럽게 '연출'하기도 하고, 많은 동물 영화나 다큐가 괴수가 되거나 아동화 되어버린다는 사실. 아이들과도 토론을 벌여봐야겠다.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결국 비박의 부푼 꿈을 접기로 하고 회의를 통해 내일의 일정을 정하다. (답사는 왜 한겨? 인간의 계획도 자연 앞에서는 이렇게 맥이 없다. 자연대로 맞춰 바꾸고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