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죠자연보호구 소회(완결)

2008년 12월 17일 | 야생동물길라잡이

 

라죠자연보호구 소회(완결)

                                                                                                                                                    참새

어둠이 찾아온 신갈나무 숲속 오두막엔 헤아린다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선연한 그리움들이 피어오른다. 북위43˚.. 어디에서 이토록 많은 그리움을 간직할 수 있을까? 그저 손으로 쓰윽 흩기만 하여도 별가루가 묻어날 것 같은 늦가을밤의 성찬은 길동무들의 근원적 자아를 자극하고, 모두들 침낭을 둘러맨 채 시베리아 호랑이의 산책길인 타친코 해안으로 달려 가게 만든다. 모두들 해변에 누워 별을 보다 지치면 노래를 부르고.. 그 아름다운 노래 가락들은 구만리 창천을 날아올라 별똥별 되어 떨어진다. 달빛이 아닌 별빛에 물든 밤바다를 본 적이 있는가? 온통 별빛으로 물든 황홀한 밤바다를.. 별은 서로 무리지어 성단을 이루었고, 별과 별 사이에는 황홀한 색을 지닌 성운이 흩뿌려져 있어 과히 보석이라는 은유가 부족함이 없다.


눈을 뜨니 0650분. 여전히 우리(왕피천, 참새)의 잠자리는 주방안 텐트속이였다. 비가 올 것 같다는 얘기에 엊그제 들어온 주방 안 잠자리였지만, 간밤에 별빛 속을 원 없이 노닌 터라 굳이 밖으로 나가서 숙영하지 않았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느린 걸음으로 해안으로 나선다. 부지런한 길동무 몇 분이 벌써 해안 나무벤치에 앉아 조용히 묵상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혜원이 온다 한 들 저리 아름다운 풍경을 그릴 수 있을까.. 고요한 해변에 앉아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으니, 우주의 순결한 기운이 들숨과 날숨 되어 온 몸으로 스며든다. 어느 새 길동무 일행 모두들 해변에 서서 어제보다 조금 이른 일출의 기운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오늘은 이 곳 천상의 코르돈을 떠나야 하는 날이라 그런지, 모두들 숙연한 마음으로 고요히 바다를 응시한다. 해안에 마지막으로 남은 일행들이 아쉬운 듯 발걸음을 뗀다. 시간을 보니 0815분. 빵과 꽁치통조림 그리고 라이스, 티.. 남아 있는 음식을 모두 꺼내어 내어놓은 듯하다. 오늘 잠자리는 라죠보호구 관리사무소에서 할 예정이니 음식을 아낄 이유는 없다. 0830분에 시작한 아침식사는 정확히 30분 소요되었고, 오늘은 이곳 Proselochngi Cordon을 떠나서 잔점박이 물범들이 사는 kid bay 해안에 들러 물범들을 관찰한 후, 라죠보호구역 내에서 가장 중앙에 위치한 아메리카코르돈을 거쳐 라죠보호구 관리사무소로 이동하는 일정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모두들 부산하게 움직여 짐들을 챙긴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곳.. 어쩌면 영영 다시 오지 못할 원시숲 자연보호구!  느린 걸음으로 굽이굽이 돌아가며 뭇생명들의 생명을 끌어안고 바다로 흘러드는.. 작은 하천의 숭고한 한가로움에 말할 수 없는 애정을 느끼고, 가을의 끝터머리에서 신갈나무 숲속에 오래토록 머물며, 열매들을 살찌우고 슬며시 사라지는 만추의 햇살이 한없이 그리워 질 것이며, 어둠이 내린 하늘가의 그 황홀한 별빛들은 내 가슴에 그리움의 생채기를 얼마나 깊게 만들어 놓을 것인가? 부드럽고 우아하게 숲에서 걸어 나와 초지의 들풀들을 나직히 불러 일으켜 세우던.. 고즈늑한 바람의 일렁임들은 또 얼마나 나를 몸살을 앓게 할 것이며.., 눈이 시리도록 푸르던 새벽의 그 명징한 박명은 얼마만큼 깊은 신열을 불러올 것인가? 그러나 그 무엇보다 가슴을 휘몰아 내달렸던 건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내 본성의 야생성..! 세포 곳곳에 죽은 듯 자리하고 있던 그 야생이 가슴을 박차고 나와 창공을 훨훨 마음껏 날아다니던 이곳.. 라조자연보호구를 어찌 잊을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주의 깊고도 경건한 마음으로 나의 세포 구석구석에 보호구의 풍광을 담아두어야 할 시간이다. 그렇게 러시안 불손이 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르돈을 우리 길동무 일행이 떠나려한다  0915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들을 어찌어찌 떼었을까.. 동편 개울가에 다달으니 냇가를 건너가기 위한 구름다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장난기 많은 우리의 나무늘보.. 다른 분이 건너가는 걸 그냥 두지 못하니, 그렇게 한동안 다리는 출렁 거리고 우리의 진한 아쉬움 또한 구름다리 따라 속절없이 출렁거리고 있다. 러시안 짚차가 이리저리 거칠게 흔들릴 정도로 산길은 험하다. 이때 알렉산더 박사가 차량이 다니는 구간 중에서도 특히 이곳은 ‘Wild area'라는 말을 전한다. 그렇게 선라이즈만을 지나고 있자니 배후에 제법 큰 석호가 눈에 들어온다. 제법 험로를 왔나 했더니 0941분에 자연보호구 경계지점을 통과한다. 경계라고 해봐야 우리나라의 임도 출입문 형태가 전부이고 그마저도 활짝 열려있다. 장애물은 어디에도 없었고 야생동물은 모두 자유로운 통행이 보장되어 있었다. 단 하나, 밀렵꾼도 장애를 받지 않는다는 게 문제이긴 했지만.. 경계지역을 통과하자마자 차에서 내려 신갈나무 숲속을 걸어들어 갔다. 여기저기 노루궁뎅이 버섯이 눈이 띤다. 몇 개를 따서 주머니에 넣으니 온 몸 가득 향기로 가득하다. 1005분. 잔점박이 물범을 볼 수 있는 곳에 도착했다. 평평한 바다 암반위에 평화롭게 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물범 18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평화롭게 보일뿐 이라는 것이 좀 더 사실적인 표현인 것 같다. 왜냐하면 암반위에 올라가 있는 숫놈 물범이 나중에 올라 올려는 다른 물범을 계속해서 쫒아 내고 있었고.. 그 등살에 지친 물범 몇 마리는 무리에서 약간 떨어진 다른 암반위로 올라가서 휴식을 취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 왔는데, 그곳은 파도가 세서 평온한 휴식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통 물범들은 4~5월에 파도의 위험을 피해 해변에서 새끼를 출산하는데, 겨울에는 최대 200마리까지도 이곳에서 관찰된다고 한다. 또한 다른 곳의 새끼들은 통상 한달 정도 하얀색을 띠는데 반해, 이곳 물범들은 2~3일 만에 누렇게 변한다고 하니,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여 생존력을 높이는 물범의 치열한 삶이 대단하다. 물범바위 곁에서 가마우지류가 수면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이때 어디선가 나타난 흰꼬리수리의 환상적인 비행을 쳐다보며 탄성을 자아내자니.. 이곳 해안에 살고 있는 잔점박이 물범을 포함한 뭇생명들은 ’참으로 행복한 서식환경을 가졌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1025분에 조망대에서 철수하여 차량이 있는 고래만에 도착하니 1050분.. 구름한 점 없는 늦가을의 해변은 너무나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해내고, 길동무 모두는 보리가 파는(?) 해변의 해당화 열매를 사 먹으며 최대한 여유를 부린다. 고래가 자주 출몰한다고 하여 붙여진 고래만! 너무나 고요한 고래만은 잘 담아진 사진과 함께 오래토록 기억에 자리할 것이다. 다시 길동무 모두는 차량에 탑승한 후 자연보호구 중앙에 위치한.. 아마츄어 과학자가 생활하고 있다는 아메리카코르돈으로 부푼 마음을 안고 달려간다.


1130분 산간도로를 계속해서 달리고 있다. 흙먼지꼬리를 연신 달고 달리니 뒤에 오는 차량의 모습은 뿌연 먼지 속에 언뜻언뜻 비칠 뿐이다. 낡은 러시안 차량은 흙먼지를 차창을 통해 여과없이 차안으로 들여놓으니, 모두들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틀어막는다. 그 모습들이 영락없는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알리바바와 사십인의 도적 일당들이다. 살집 좋은 인나박사의 옆에서 얼레지가 익살스런 표정으로 얘기를 하더니 건포도와 호두를 꺼집어낸다. 역시나 인나의 환호성은 지체할 줄을 모른다. 풍부하고도 익살스런 인나박사의 제스쳐는 길동무 일행을 언제나 웃음 짓게 만드는 묘약이다. 이런저런 대화를 두런거리는 인나와 얼레지의 차안모습은 영락없는 모녀지간이다. 간간이 인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인가 주변도로는 잠깐잠깐 포장이 되어있지만 마을을 벗어나기만 하면 어느새 비포장 길로 변한다. 어느 지점에선가 차량은 다시 숲속으로 방향을 틀더니 험로를 달려 나간다. 가을은 깊어가는 듯 여기저기 홍엽들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한참을 달려가니 헌터빌리지 라는 설명과 함께 마을 어귀에는 노소가 섞여있는 8명의 헌터가 날카로운 눈빛을 차량으로 쏘아 보낸다. 그들의 눈빛을 받으며 숲속으로 조금 더 들어가니, 제법 넓은 공터가 나오고 공터 한가운데는 높은 망루가 서 있었다. 밀렵을 감시하는 초소인 것 같아 알렉산더박사에게 물어보니, 밀렵꾼들이 보호구역 경계지점에 자신들이 사냥할 야생동물들과 인스펙트를 관찰하기 위해 세워 놓은 초소라는 설명이 들려온다. ‘이런..!!’ 자연보호구 인스펙트들과 밀렵꾼들간에 심각할때는 서로 총질까지 하는 상황도 연출된다고 하니, 인스펙트들의  일상속에 내재하고 있는 거친 야생에 슬며시 긴장감이 밀려온다. 산속에는 어디에나 냇가가 있다. 달려오는 차량의 소리에 냇가 근처에 있던 멧돼지 한 마리가 쏜살같이 달아나는데, 어찌나 빠른지 하마터면 소리만 들을 뻔했다. 숲속차량이 다니는 통로에 50년생 정도의 나무한그루가 통째로 누워있다 1250분. 차량이 진행 할 수 없어 어찌할 것인지 잠시 고민들을 나누더니 힘을 합쳐 나무를 밀기로 하였다. ‘어이차..어이차..’ 쓰러지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의 나무였지만 한켠으로 밀어놓으니, 바퀴하나를 숲속으로 내어놓으면 통과가 가능해질 정도의 폭이 만들어졌다. 모두들 박수를 친다. 1304분 그렇게 험로를 통과하여 도착한 숲속 보호구역 중앙의 아메리카코르돈은 시베리아 호랑이 무리가 그려진 낡은 입간판이 우리를 먼저 반긴다. 여지껏 묵었던 보호구의 해안가 코르돈과는 달리 이곳은 숲속 향기로 가득하다. 따사로운 햇살아래 땅딸개와 고양이가 서로 힘자랑을 하는 이곳은 외견상 평화롭기 그지없다. 해안가에 위치한 보호구역들은 참나무류의 수종이 주종이지만, 이곳 산림의 수종은 가래나무, 다래나무, 자작나무 같은 낙엽활엽수림대를 형성하고 있고, 숲을 따라 5km정도 올라가다 보면 활엽수림대와 침엽수림대의 혼합림을 만날 수 있으며, 10km 정도 올라가면 완전한 침엽수림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곳 산간에서는 말사슴들이 쉽게 관찰이 되고 있고, 멧돼지와 불곰도 볼 수 있으며 시베리아 호랑이 역시 불곰과의 마찰을 피한 채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불곰하고 호랑이하고 누가 더 센가요?’ 우문이지만 궁금한 질문이다. ‘서로 맞짱을 잘 뜨지 않아 확인할 순 없지만 호랑이가 우위에 있다’ 는 설명이다. 그래서 나름 이렇게 정리해본다. ‘만만치 않은 호랑이고.. 버거운 불곰’ 이라고..! 

이곳 낮은 지형에는 꽃사슴 무리들이 떼지어 살고 있는데, 그들의 먹이는 지면에 있는 식물들이고 말사슴과 노루들의 먹이는 관목의 잎과 여린 줄기 등이 주식이 된다고 하니, 먹이경쟁에서 조화로움을 선택한 그들의 지혜가 부러울 따름이다. 통상 10월 초순 시베리아호랑이의 개체수 카운터에 들어가는데 발정기 때는 소리로도 개체수 파악이 가능하다고 한다. 35개 지점에 표시목을 격자형으로 만들어 놓고 대형 포유류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보완을 강구하여 대책을 세워 실행한다는 알렉산더 박사의 말을 듣고 있자니.. 밀렵이 엄연히 상존하는 거친 환경에서도 야생을 보존하려는 그들의 고단한 노력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1428분 숲속에서 내려와 점심식사를 한다. 빵, 꽁치, 야채뽂음, 감자찌개 그리고 싱싱한 대파! 이곳에서는 그나마 국물을 먹을 수 있어 감사했다. 식탁에 같이 내어 진 생대파에 모두 아연질색 했지만..^^: 그렇게 점심식사를 마치니 1450분. 이곳의 자연과학자인 할아버지 인스펙트분의 설명을 듣고자 일행들이 슬슬 모여 드는데, 알렉산더 박사에게 급한 회의 일정이 있어 일행의 반은 차량에 탑승해야 한다고 한다. 재미난 얘기는 남아 있는 길동무들이 메모를 잘 하기를 바라며 아쉬운 마음 코르돈에 걸어둔 채, 고려민족의 멧돌과 목각이 놓아져 있던 숲속 코르돈을 떠나왔다. 들어갈 때의 역순으로 돌아 나오는 길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또 다시 지나는 밀렵마을의 호사스러움(?)과 화려함을 보면서 야생을 보존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인스펙트들의 거친 일상이 오버랩 되면서 차를 타고 오는 내내 머리가 묵직하다. 그렇게 숲속 험로를 탈출한 것이 1600 정각.. 그때부터 비포장 러시아 국도를 타고 라죠보호구 관리사무소로 러시안 짚차는 기세 좋게 달려 나가기 시작한다. 오는 차량 안에서 지난 3박4일 동안 노구에도 불구하고, 야생의 현지를 인도하는 내내 강건하던 알렉산더 박사의 깜박깜박 조는 모습을 보니, 살짝 짠해지면서 인간적인 면모가 더 느껴진다. 차창 밖으로 길가의 민가들이 보이는 횟수가 잦아지더니 그리스정교(?) 수도사가 검은 의상을 입고 민가를 방문하는 모습도 보이고, 집에 있던 러시안 아낙이 환한 웃음과 함께 수도사에게 무엇인가를 건네는데.. 아낙과 수도사의 활짝 웃는 모습이 참 보기가 좋다. 국도로 진입한 지 20분이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라죠보호구 관리사무소에 차량이 도착했다. 알고 보니 숲을 벗어난 국도에서 관리사무소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후발대도 얼마 있지 않아 도착하고.. 우리는 박물관 옆 사무실에서 산양 서식지와 산양의 모습들을 촬영한 DVD를 시청한 후, 알렉산더 박사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투만라야산에서 들었던 박사와 호랑이와의 조우 때의 흔적 사진들을 살펴보았다. 모두들 화면에 열중하고 있던 그 순간.. 참새는 열린 도어문에 비친 햇살좋은 나뭇잎 그림자를 보며, 며칠간의 황홀했던 야생에서의 여정을 꿈결인 듯 조용히 갈무리 한다.

 

1900분에 우리는 첫날 묵었던 게스트룸에서 이번 교육과정에 대한 총평 시간을 가졌다.

‘교육생 모둠끼리의 선행학습. 교육생의 입장에서의 프로그램 운영 필요, 동물과 식물의 끊을 수없는 관계의 이해 등등이 지적되었지만, 야생의 살아있는 서식처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고, 오감을 열고 느끼려 애썼고, 문명을 떠날 수 있는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 이번 여정은 매 순간이 황홀했다‘ 는 의견들이 줄을 잇는다.


2000분. 이제 저녁을 먹으러 출발이다. 여정의 마무리를 겸한 식사이니 러시아 보드카의 진수를 맛볼 수 있을까? 입맛을 다시니 목구멍으로 슬슬 술벌레가 올라온다^^ 끈적끈적한 음악이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는 레스토랑에는 하이힐을 신은 러시안 종업원이 서빙을 한다. 장난끼 가득한 영준쌤이 허느적거리는 춤을 선보이는 사이, 보드카가 나오고 이어서 안주들도 차례로 테이블에 차려진다. 몇 번의 건배와 함께 푸스킨의 시를 낭송하는 인나박사의 화려한 변모는 연회자리의 흥겨움을 배가 시키고, 그런 인나의 옆모습을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알렉산더의 눈길에는 사랑스러움이 가득하다. 그렇게 흥겨운 시간이 지나가니 우리들 몇몇은 러시아 식품점에 들어가 맥주와 안주거리를 사 들고 숙소로 향한다. 1100분 모두들 숙소로 들어간 후, 뿌연 알전구가 옅게 그림자를 드리운 박물관 옆 공터에는 왕피천, 안개, 참새, 금강송이 남아 쉬리의 흥겨운 잔을 받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러시안 청년이 자리에 합석하게 되고 쉬리와 정담을 나누는데.. 그 정담이 얼마나 좋았던지 밤을 꼴딱 넘겼다는 후문이 들렸다.

이튿날, 알렉산더 부부와 우리 일행은 기념촬영을 하면서 내내 아쉬움이 가득하다. 길동무들의 마음속에 그리움으로 자리 할 이곳, 라죠자연보호구를 떠나야 할 시간이다. 알렉산더 박사와 작은뿔님의 깊고 진한 포옹에서 석별의 정과 함께 질기게 자리할 두 분의 우정을 발견한다. 이렇게 우리는 시베리아 호랑이가 살고 있는 라죠자연보호구를 떠나 문명으로 회귀하였던 것이다.


단지 며칠간의 원시자연 속으로의 나들이였음에도.. 이토록 문명이 갑갑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몇 천만년 동안 세포 속에 묵묵히.. 그러나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던, 나의 원초적 유전자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러시아 극동의 라죠자연보호구 심화교육 기행문을 접으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