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후기] 설악산, 엄마품

2008년 8월 26일 | 야생동물길라잡이

8월 15일 마지막 여름 휴가로 차들이 꽉 막혀 정말 어렵게 어렵게 찾아간 설악산, 백담사.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백담사에 도착해 박그림 선생님의 설악산 이야기를 들었다.
설악산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 그 속의 동물들,
1년에 340만 명의 관광객들이 몰려와 몸살을 앓고 있는 설악산.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산이란 뭘까.
입산예약제같은 것을 통해 산을 조금더 경건하고 소중하게 대해줬으면 좋겠다.
정복이니 극기훈련이니 하는 나 자신만을 위한 생각도 내려 놓았으면 좋겠다.
산, 산…

박그림 선생님의 열렬한 사랑, 산양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산양은 바위를 잘 타는 동물인데, 그에 걸맞은 발을 가졌다.
발바닥의 위쪽 겉부분은 딱딱하지만 아래와 뒤는 바위에 잘 붙도록 비교적 말랑말랑하다.
사슴 종류와 산양은 윗앞니가 없는 대신 잇몸이 단단한 데, 아래앞니와 잇몸과 혀로 풀을 뜯어 먹는다고 한다.
윗앞니가 있는 토끼는 풀을 가위로 자른 듯 싹뚝 잘라 먹지만, 산양들은 이빨자국이 난다.

모든 것이 그렇듯 언제나 딱딱 맞는 것은 아니지만,
암컷 산양은 얼굴이 비교적 밝고, 뿔이 나란히 있는 반면, 수컷 산양은 얼굴이 어둡고 뿔이 굽어져 있고 사이가 넓다고 한다.

230일간의 임신에 한마리, 간혹 두마리의 자식을 낳는 산양.
태어난 지 석달은 어미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고, 2년 반이면 독립을 한다고 한다.

겨울철에는 마른 음식을 먹기 때문에 갈색의 퍽퍽한 똥을,
여름철에는 축축한 음식을 먹기 때문에 까맣고 축축한 똥을 누는데
한 번에 4-500개, 영역을 표시할 때는 100-150개를 눈다고 한다.
똥으로 판단해 정확한 결과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야생에는 어림잡아 7-800마리의 산양이 산다고 한다.

내일은 산양을 볼 수 있을까.

9월에 같이 교육을 듣는 몇몇 분들이 가시게 될 러시아 라죠브스키 자연보호구의 사진도 보았다.
넓디 넓은 러시아 땅에, 잘 보호되고 있는 보호구역, 많은 동물들.
호랑이의 사냥 이야기는 정말 흥미로우면서도 무서웠다.

박그림 선생님의 강의가 끝나고 끝으로 박그림 선생님의 명함이 나왔는 데 전화번호가 적혀 있길래 빨리 적어버렸다. 011-XXXX-XXXX. 푸히히히. 번호따기.

강의가 끝나고 법당에서 예불을 드렸는데, 조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서 누구에게 절을 하는 걸까. 지금 이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절을 할까.
내 옆에는 소원카드 만원, 삼만원, 오만원이라고 적혀있었고, 법당 천장에는 그 소원카드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저건 뭘까. 돈으로 산, 돈을 위해 만들어진 카드? 왜 그리 불청객처럼 보이던지.
백담사까지 오는 2km 가량의 길은 수 많은 버스가 빠르게 달릴 수 있게 잘 포장된 아스팔트 길.
카페, 기념품가게, 라면까지 끓여주는 매점, 전두환 전 대통령이 쓰던 곳, 편리한 화장실, 뜨끈뜨끈한 방바닥.
절 문화 체험이라고 써 있는 현수막이 왜 호객행위로 밖에 보이지 않는 건지.
절, 종교도 편하고 부유한 삶을 꿈 꾸는 구나.
물론 좋은 면도 많지만 내가 잘 보지 못하는 거겠지.
하지만 마음껏 나누고, 아낌없이 베푸는 것, 경제를 뛰어넘는 온갖 것들에 대한 사랑은…
자연을 닮으려는 그 작은 마음은…

공양간에서 주는 저녁을 먹고 김영준 선생님과 황윤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다.

야생동물 수의사가 바라본 공존.

이 땅의 야생동물은 왜 사라졌고 사라지고 있는가.
밀렵과 남획, 서식지 파괴와 단편화, 환경오염, 외래동물 혹은 침입종, 전염병.

야생동물이 왜 다치는가를 4349마리의 다친 동물들을 조사해 보았더니
사람에 의해 다치는 것(anthropogenic impact)이 75%(3181마리), 자연에 의한 것(natural impact)가 25%(1168마리)였다 한다.
사람에 의한 것 중으로는 밀렵(덫,올무,총), 독, 충돌, 기타, 모름.
자연적인 것은 질병, 탈진, 고아.

새들의 경우에는 창문에 부딪혀 죽는 경우가 너무 많다.
야행성 조류의 눈은 흑백이지만 매우 잘 볼 수가 있다. 하지만 유리같은 것은 인식을 못해서 날아가다 그대로 부딪혀 죽는 것이다.
그들로썬 아무 이유없는 죽음이 아닌가. 창문에 커튼이나 쿠션망같은 것을 해 놓은 다면 이들이 피해갈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새들은 전깃줄에 올라가 감전사로 죽는 경우도 있고, 낚시바늘을 먹고 죽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인간들 때문에 참 많이 죽음을 당하는 구나.
로드킬로 죽는 새들을 보면 조금 의아하기도 했는데, 작은 새들은 트럭같이 큰 차들이 지나갈 때 생기는 소용돌이에 휩쓸려 차에 치이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개 한마리의 파보 바이러스때문에 떼죽음을 당한 야생사자 무리의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죽은 개를 바다에 던져버렸는 데 그 개의 바이러스가 변종을 만들어 내 돌고래 떼의 죽음을 야기시켰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고양이들이 새를 사냥해 문제를 일으킨다고도 하고…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더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 같다.

그 밖에도 무서운 전염병들을 소개해 주셨다.

광견병, AI, 모기 매개성 질병인 Pox virus, 외부기생충, 로드킬보다 너구리를 더 많이 잡는다는 sarcoptic mange(옴), 보툴리즘 중독…

통제 했었다 믿었던 질병이 재출현하기도 하고, 신종 전염병이 돌고 바이러스들이 생기고,
인수공통의 전염성 질병이 새롭게 계속 출현하는 걸 보면… 어쩌면 너무나 번창한 인간종에 대한 경고가 아닐런지…

지구의 과도한 이용으로 파괴된 생태계, 그 결과로서 받게 되는 천벌…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인간이 나약한 존재이고 또 작은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도 그저 수많은 생명체 중의 작은 하나일 뿐인 것이다.

두번째로는 황윤 감독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황윤 감독님은 야생동물 다큐멘터리 <어느날 그 길에서>, <작별>, <침묵의숲>을 만드신 분이다.

I speak about them to you.

황윤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야생동물의 슬픈 삶 이야기.

야생동물이 무어냐는 질문에 '어머니 지구에서 태어난 또 다른 이웃, 형제'라는 말과 동시에 '사회적 약자, 소수자'라는 말을 하셨다.

“이제 만물이 소수자입니다.”

<어느날 그 길에서>는 로드킬, 차에 치어 죽는 야생동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에게 묻고 있다.
길, 행복.
야생동물에게 길은 무엇일까. 차는 무엇일까.

도로를 만드는 데 이제는 생태통로도 염두에 두고, 펜스도 치고 노력도 하지만.
어느 것 하나 해답이 되진 못한다.
도대체 왜 이리 도로를 많이 만드는 걸까. 이 좁은 나라에.
면죄부를 주고 싶지 않아 생태통로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지 않으셨다는 황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답답함 속에서 조금은 통쾌해졌다.

그만 좀 했으면.

나부터도 도로와 차를 이용을 줄이려고 노력해야겠지.

<작별>은 동물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북극곰이 계속 머리를 흔들어 대는 데 사람들은 인사를 한다고 박수를 치는 게 어이없으셨다고 한다.
북극곰이 머리를 흔드는 건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정형화 행동이다.
행동풍부화 프로그램으로 많이 노력하고 있다고는 한다.

동물원. 어쩔 수 없는 인간 위주의 판타지.
인간이 이렇게 마음대로 동물을 가둬놔도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곳.

생태형 앞서가는 동물원들은 서식지를 재현해 생태적 전시를 하고, 멸종위기 종 보존과 연구, 환경교육에 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환경을 뒤바꾸는 데 필요한 그 어마어마한 비용을 서식지 보호하는 데 쓸 수 있다면 그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에에, 너무 어렵다. 근데 또 다 안된다고 말…..해도 되긴 하지만 ㅋㅋ 다른 동물원에 비해야 훨씬 좋지만.

4년전 즈음 동물원으로 일주일정도 체험학습을 간 적이 있었다. 어린이동물원에서 일했는데 사육사분들은 정말 열심히 일하셨지만 트집잡기를 좋아하는 나는 다 불만이었다.
철장 속에 갇혀있는 다 자라지 않은 맹수들을 보고, 날지 못하는 맹금류를 보고, 시멘트 바닥의 아기 동물들을 보고, 철장 속의 원숭이들을 보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에게 이벤트로 펭귄과 당나귀, 개를 만지게 해주는 데 정말 사람이 우선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바짝 마른 펭귄은 정말 불쌍했다.

유리로 철장으로 둘러쌓인 채 구경거리가 된 기분은 어떨까?

동물원장님이 동물원 체험시켜주신다고 데리고 다니시는 데 내가 불만에 가득차 있는 게 보이셨는 지 동물원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시길래 필요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생전 보지도 못할 동물들과의 만남과 교육을 위해 동물원은 존재해야 한다고 하시길래 그 땐 결국 아무말 못하고 울면서 도망갔던 것 같다.

내게는 무엇이 옳은가 심판할 능력같은 건 없지만, 어렸을 때 꿈과 환상의 동물원에서 느꼈던 시끄러운 즐거움보다 야생동물 교육을 받으면서 자연에 조심스레 발을 들이던 조용한 즐거움이 훨씬 크다.

끝으로 대중미디어 속의 야생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대중 미디어 속의 야생동물은 늑대인간, 킹콩, 아나콘다, 브이, 구미호, 샤크, 딥블루씨처럼 포악한 괴수, 제거대상, 야만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동물농장이나 주주클럽, 국제전화 002처럼 애완화된 이미지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 포악한 늑대, 교활한 여우, 미련한 곰처럼 정형화된 이미지로 나타기도 하고, 내셔날지오그래픽이나 동물의 왕국처럼 지식인의 관찰대상 혹은 보호의 대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네셔날 지오그래픽 채널을 보는 것을 참 좋아했는 데 황윤 감독님이 놓치는 부분이 많을 것이란 이야기를 들으니 그제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한 전지전능한 나래이션. 동물들을 지식인의 지적호기심을 풀어줄 관찰대상, 분석하고 보호하고 관리해야 할 존재들로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할 게 참 많구나.

다음날 비가 와서 비박은 못하게 되었고 대승골에도 들어가지 못할 것 같으니 2박3일 일정을 하루 줄여 1박2일로 하게 되었다.
그래도 아쉬움에 밥을 먹고 짐을 챙겨 산에 갔다. 주먹밥도 챙겼다.

백담 설악산 야생동물 박물관에 들려서 뼈와 박제된 동물들을 보았다. 2층은 박그림 선생님이 쓰시는 공간이었다.

멧돼지 뼈도 보았는데 무지 컸다. 김영준 선생님이 설명해 주셨는데 멧돼지 이빨은 윗니 22개, 아랫니 22개로 이빨이 포유류 중에 가장 발달했다고 한다. 뾰족하고 넙적하고 다양하게 생긴 이빨이 보여주듯 멧돼지는 모든 걸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나이를 먹으면 두개골에 나있는 선들이 펴지는 데 그걸로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고도 한다. (나는 잘 모르겠다;;)

개와 너구리 뼈의 차이. 기회포식자 너구리는 이빨 힘이 굉장히 센데 그 때문에 턱이 발달했고 관자놀이 근육이 발달했다고 한다.
긴 두개골과 목이 두꺼운 족제비과, 동그랗고 입이 짧은 고양이과.

로드킬로 죽은 동물들의 사체를 주어서 뼈를 얻는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셨는데 왜 섬뜩하지.
우리가 사체를 줍는 이유라는 책 좀 읽어봐야 겠다. 나한텐 아직 무서운 이야기였다. 뼈도 사체도. 끄에엑.

그리고 길골에 들어섰는 데, 조금 걷다 보니까 말할 수 없이 상쾌하고 포근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 품에 돌아온 듯한 기분, 너무너무 그리웠던 그 기분. 반갑고 포근한 기분에 들떠 거추장스러운 우비를 당장 벗고 그 공기, 그 냄새, 그 초록을 깊이 들이켰다.

그렇게 걷다 보니 두꺼비도 보이고 개구리도 보이고, 달팽이들도 많고, 다람쥐들도 시끄럽고, 멧돼지 똥도 보였다. 똥냄새를 맡게끔 나뭇가지에 똥을 콕 찍어 코에 들이밀어 주시는 친절한 박그림 선생님.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렇게 아쉬운 산행을 마치고 나와 차를 타고 양구 산양증식복원센터로 갔다.

야생동물 생태관에는 많은 박제가 있었는데 꿩이라고 써있는 데 하얀색 새가 있었다. 알비노인가? 색이 바랜건가? 뭐지??

밖에 나와보니 물 건너편에 바위에 뽕잎을 먹는 산양들이 있었다.
그동안 산양을 사진에서만 보았는 데 실제로 보니 더 귀여웠다. 뛰는 산양, 걷는 산양, 엎드려 있는 산양.
아, 정말 바위를 잘 타는 구나. 수영도 곧 잘 한다고 한다.

산양이 있는 곳은 꽤 넓고 사람의 눈을 피할 수 있는 나무가 우거진 곳도 있었다.
우리가 계속 귀찮게 하자 그 곳으로 달려가는 산양을 볼 수 있었다.

올무에 걸렸다 치료한 담비도 볼 수 있었는데 끄아, 정말 너무 귀여웠다. 동그란 원통같은 곳에 들어가 모습을 보여주지 않다가 끝내 나와서는 신경질을 내는 담비. 떠들고 귀찮게 해서 미안. 얼굴을 보고 얼른 나왔다. 우와.

걷다 보니 죽은 땃쥐도 있었다. 풀 숲에 숨어있는 산양도 보였다.

그리고 정창수 의원님이 이끄시는 데로 다시 이동했다. 거기도 산양이 있었는 데.
산양 한마리가 저 멀리 바위에서 꼼짝도 않고 있길래 산양인지 그림인지 한참을 봐도 모르겠어서 다른 쪽으로 가보니까 바위 위에 산양들이 더 많았다. 다들 진짜였다. 얼굴이 흰 바둑이 산양도 있었다.
러시아에는 산양들이 다 그렇게 얼굴이 흰데, 우리나라는 드물다고 한다.

정창수 의원님이 산양을 만나게 된 계기를 들었다. 이유도 모르게 흑염소를 많이 키우게 되셨는 데 그 흑염소들에게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으게 되셨다고 한다.

자기 무리를 지키기 위해 개의 이빨 앞에서도 비키지 않고 맞선 대장 흑염소.
폭설이 와 며칠동안 먹이를 주러 갈 수 없었는데 멀리서 늘 그랬던 것처럼 빵빵 크락션을 울리자 눈을 뚫고 한 줄로 대장을 따라 천천히 걸어오던 흑염소들.
어느날 강의를 듣는데 흑염소의 조상이 산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산양을 운명처럼 만나게 된 선생님. (잘못된 이야기였지만ㅎㅎ)
흑염소가 이끈 삶, 산양이 이끈 삶이 참 행복해 보였다.

맛있는 저녁밥을 먹고 청개구리 선생님 차를 타고 말똥가리선생님이랑 꽃마리선생님이랑 거북이 선생님과 함께 청주까지 편히 왔다.
늘 돌아가는 길에는 금은보화를 찾은 듯이 마음이 풍족해져서 간다. 히히벙벙 웃으면서.
청주에 늦게 도착해 버스가 끊겨서 엄마가 데리러 오셨는데 설악산처럼 포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