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야생동물의 흔적을 찾는 길의 서운함 – 야동단기과정

2009년 3월 11일 | 야생동물길라잡이

야생동물의 흔적을 찾는 길의 서운함

                                                                                    – 야생동물길라잡이 단기과정 후기. 자연생태국 보람.

흔적을 찾으러 가는 길의 끝은 서운함, 이었다.
마주하고 싶은 것들이 고 어디쯤에서 나타나지 않는 것에 대한 서운함이기도 했고, 뭐랄까 좋다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아리까리'함에서 오는 느낌이기도 하다.

녹색교육센터 야생동물 길라잡이 단기 과정의 마지막 교육을 위해 시화호로 갔다. 이제 '호'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자라난 갈대밭에서 이곳이 실은 갯벌이었고 바다였음을 알려주는 것은 화석처럼 땅에 박힌 하얀 조개껍데기뿐이었다. 무릎까지 촘촘히 올라온 갈대들이 한 발짝 띄우는 걸음의 속도를 자꾸 늦추게 했다. 늦어진 걸음대신 보다 넓게 천천히 살펴 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그 덕에 갈대밭 사이로 난 좁은 길이나 맨땅 위에서 너구리의 발자국이나 고라니의 배설물과 같은 야생동물의 흔적을 발견 할 수 있었다.  

90년대 바다가 뭍이 되고 난 이후 이곳에서는 바다가 뭍으로 변하는 천이의 과정이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내 키만큼 자라난 갈대도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라고 한다. 염분이 많은 갯벌에서 살아가던 염생식물이 점차 땅에서 자라는 식물들에게 자리를 내 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곧 그곳에서 무성하게 자라는 나무를 보게 될 것이다. 그 땅이 이대로만 있어준다면 말이다. 가득히 자라난 갈대덕택에 사이사이로 몸을 숨기기 좋은 곳이 있을 터. 갈 곳 없는 야생동물이 이곳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온통 짭짤한 염생식물들을 먹기도 어려웠을 테고, 몸을 숨기기가 쉽지도 않았을 테니. 고라니와 너구리, 삵과 맹금류의 먹이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흔치 않은 그곳에서 야생동물의 흔적은 사람들 발자국 보다 많아 보였다. 야생동물을 배우기 위해 들어선 곳, 야생동물 발자국을 따라, 흔적을 찾아 다녔다.

시화호를 매립하고 나서 발견한 공룡알 화석은 이곳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게 만들었고 여타 개발 사업이 쉬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했다. 바다인 곳을 막아 발견한 공룡알이 훌륭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저 수십만 년 전 생물의 흔적에 이렇게 가치를 높여주면서 바로 전 살아가던 수없이 많은 새들과 조개들의 흔적이 아닌 실존에는 왜 이리 매정했을까 싶었다. 여하간 그 덕에 이곳엔 뭍에 사는 야생동물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자꾸만 흔적을 따라가는 내 마음 한곳에서 피어나는 섭섭함 들을 외면하기는 힘들다. 도심 근처 고라니와 멧토끼 맹금류와 새들의 흔적을 보는 일이야 즐겁지 않다고 할 수 있겠냐 만은 화석처럼 땅에 박혀버린 조개들을 보자 하니 이걸 좋다고 해야 하나 아니라고 해야 하나.  

시화호 매립지에서 야생동물길라잡이 단기과정을 마무리 하면서, 야생동물의 이야기를 현장에서 직접 확인 한다는 것 그것 하나는 어떤 뒤 끝 없이 만족 할 만 했다. 찬찬히 살피는 방법. 야생동물의 길을 찾는 방법. 늘 그렇듯이 교실에서만 이뤄지는 강의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야생동물의 흔적을 쫒다 보면 오감을 새롭게 사용하는 방법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손으로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길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눈으로 봐야 하고, 이 녀석들의 냄새를 쫒기 위해서는 코도 필요하다. 땅에 떨어진 깃털을 만져봐야 하고, 때때로 맹금류가 자리 잡은 바위위로 올라서봐야만 그들의 시선을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가 있다.

시화호에서 느낀 어떤 서운함 들을 앞으로 나는 어떻게 느끼게 될까. 야생동물이 살고 있을 동시에 사라지고 있을 어떤 곳에서 나는 그들의 흔적을 바라보며 그나마 있음에 감사하게 되고 동시에 사라지는 것들에 안타까워하겠지. 매번 생명이 살아가는 어떠한 공간에 들며 그들의 흔적을 뒤쫓을 때마다 서운함, 안타까움 같은 것을 느낄 것 같다. 그들이 쉽사리 내 앞에 떡하니 자신들을 들어내지 않는 것 때문이다. 동시에 그들의 흔적을 찾는 일 그 자체가 어려운 것들이 되어가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이 얼마 되지 않은 짧은 기간 동안, 그걸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아직 이 땅에 살아가는 야생동물이 있다. 이 삶을 지켜내는 일, 이것이 내가 녹색에서 얻은 새로운 삶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