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의 불편한 진실로부터 독립한 ‘물지도 프로젝트’ /공태식(중앙여고 환경동아리 ‘담쟁이덩굴’ 지도교사)

2013년 10월 17일 | 녹색소식

처음엔 걱정도 많이 되었다. 가게에 들어가서 물건을 사주는 것도 아니면서 물을 달라고 ‘때를 쓸’ 생각을 한다고 생각하니 민망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아무튼 부담이 많이 되었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처음이 힘들다고, 한번 뻔뻔해지니까 그 다음부터는 말을 하는 것이 편했다. ‘물지도 만들기!’ 2013년 HSBC 미래세대 섬환경캠프 주제는 바로 물이었다. 굳이 생물선생님인 것을 티내지 않더라도 물이 우리에서 가장 중요한 물질인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맑고 건강한’ 물을 얻는다는 명목으로 우리는 우리의 자연을 괴롭히고 있다. 문제는 그렇게 생수를 사느라 돈을 쓰면서 자연을 괴롭히고 얻는다는 것이 환경호르몬이라니!

생수통을 만드느라 환경을 파괴하고, 생수를 얻기 위해 여기저기 구멍을 뚫어대며 자연을 망가뜨리고, 생수를 사기위해 돈을 쓰고, 생수통에서 나오는 각종 유해 물질들에 노출되며 나의 건강과 자연의 건강을 해쳐야만 할 것인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목이 마르면 어쩔 수 없다. 돌아다니다보면 목이 마르다. 매캐한 자동차 배기가스가 넘치는 거리를 사람들은 걷고, 걸으면서 수다를 떤다. 그러면 목이 마르다. 목이 마르니 음료를 사야하고, 달짝지근하거나 씁쓸한 ‘액체’를 싫어하는 사람은 생수를 산다. 아침에 물통이나 텀블러에 물을 담아서 나온다고 해도 그 양이라고 하는 것이, 물을 자주 마시는 사람에게 하루를 버틸 물의 양은 되지 않을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도시 속에 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에 섬캠프 선생님들과 함께 더운 여름날 토요일 오전 대학로 일대를 돌아다니며 물을 얻을 수 있는 ‘착한 가게’를 찾아 나섰다. 위에서 언급했듯 처음에는 어색했다. 하지만 재미있었다. 물을 이렇게 쉽게 얻을 수 있다니! 물을 얻을 수 없는 곳을 찾는 것이 더 어려웠다. 80% 이상의 가게에서 물을 얻을 수 있었고, 이를 지도에 표시하고 그 내용을 교육센터에 돌아와 다른 선생님들과 공유했다.

그런데 선생님들과 물지도 만들기를 만들면서 한 가지가 떠올랐다. 아이들. 어쩔 수 없는 직업병! 지금 근무하고 있는 고등학교의 환경동아리 아이들과 물지도 만들기를 같이 해보면 어떨까? 학교에 가자마자 아이들을 소환했다. 우리 아이들은 물지도를 만들기에 최적의 조건인 신촌, 이대 근처에 살고 있었고, 이에 신촌 일대를 세분화하여 팀을 짜서 물을 얻을 수 있는 상점을 조사하면 좋겠다며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뭔가 찝찝한 표정들. 하지만 끝나고 난다음 많은 것을 느낀 아이들.

그동안 뭔가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하나 하고 싶었지만 아이템이 없어서 못했는데, 아이들이 환경동아리라고는 하지만, 내 눈에는 환경에 대한 관심 정도만 있을 뿐 정말 자연을 사랑하는 아이들인가, 녹색에 대한 마인드가 있는 아이들인가에 대해 고민이 있었던 찰나에 환경동아리로써 단지 놀거나 스펙쌓기용이 아닌, 진정으로 의미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는데, 처음에는 반신반의 하던 아이들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오히려 더욱더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잘 따라와 주었다.(환경동아리에 있는 아이라면 그 인성이야!)

아이들은 8월 15일을 ‘생수로부터의 독립기념일(?)’로 선언하고, 신촌과 이대, 학교가 있는 북아현동 일대를 총 6개 구역으로 나누고, 12명이 2명씩 한조를 이루어 상점을 돌아다니며 물을 얻을 수 있는 오아시스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개학 이후 데이터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noname01noname02

 

아이들의 조사에서도 선생님들이 대학로를 조사했을 때랑 비슷한 결과를 볼 수 있다. 상점의 유형에 따라 물이 비치되어있는 곳은 항상 물을 얻을 수가 있었다. 고객들이 머물면서 ‘상품’을 골라야하는 곳은 항상 물이 비치되어있고, 그런 곳은 언제나 물을 얻을 수 있었다. 어쩌다가 물을 얻을 수 없는 곳은 내어줄만한 물이 비치되어있지 않아서 얻을 수 없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물이 있는데 안 내어주는 곳은 거의(?) 없었다.

물론 한계는 있었다. 아이들이 얻는 대부분의 물은 큰 생수통에 담겨진 물이거나 정수기의 물이었다. 이런 물들도 분명 자연을 아프게 하는 과정을 통해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작은 생수병에 담겨 판매되는 생수에 비하면 그 정도가 덜 할 것이다. 환경적인 측면에서 가장 좋은 것은 그냥 수돗물을 마시는 것이다. 목이 마를 때, 미리 준비한 물통이나 텀블러를 가지고 가장 가까운 상점에 들러 수돗물을 받아마실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차선책을 선택해야하고,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 차선책에 대한 가능성을 보았다.

크기변환_DSC_5147[1]

크기변환_사본 -DSC_5155[1]

<물 프로젝트 발표중인 학생과 발표 후 환경동아리 담쟁이덩굴 인증샷>

 그런데 교사의 입장에서 볼 때,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활동이라는 것을 넘어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더 큰 수확을 얻은 것 같다. 아이들이 이 활동을 통해 느낀 게 많았다고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그 더운 광복절의 태양 아래 민망함을 무릅쓰고 떨리는 마음으로 첫 가게에 들어가 물 한 잔을 얻으며 자신감을 얻었고, 그렇게 신나게 신촌 일대의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인정’을 느꼈다. 어떤 아이는 가게 주인분들께 “참 좋은 일을 하고 있다”며 격려를 받았다고 자랑을 했다. 아이들은 이렇게 자신들이 하는 활동에 대해 보람을 얻고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더 큰 일을 하기 위해 칭찬만큼 큰 동기부여가 어디 있을까. 이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자연에 대한 소중함을 느꼈고, 자신들이 하는 활동 하나가 자연 그대로의 자연을 지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이 프로젝트가 다른 학교 동아리들과 연계하여 널리 퍼져나가길 바라고 있다. 그런 만큼 이번 물지도 프로젝트가 자연을 지키는, 작지만 큰 실천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 사실 아직까진 물통을 들고 다니며 물을 얻는 것이 약간은 낯이 두꺼워야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지만, 물지도 프로젝트가 확산이 된다면 누구나 부담 없이 자연을 아프게 하는 생수를 사지 않을 것이다. 대신 물통을 들고 다니며 인정이 담긴 생명의 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공태식선생님은 2008년부터 녹색교육센터 자원교사활동을 하고 계시며, 미래세대섬환경캠프 스텝.모둠교사 소모임 <노다지>의 으뜸지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