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연속강좌 – 1] 석유, 과연 인류에게 축복일까?

2008년 2월 19일 | 녹색시민 강좌

김재명의 '석유, 욕망의 샘'

녹색연합은 <프레시안>과 공동으로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라는 주제의 연속 강좌를 개최하고 있다. 1월 23일부터 2월 27일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매주 수요일 서울 혜화동 녹색교육센터에서 개최되는 이 연속 강좌는 기후 변화를 둘러싼 여러 가지 쟁점을 살펴보고, 대응 방향을 모색해보는 자리이다.

이 강좌는 14일부터 매주 목요일 <프레시안>에 연재된다. 연재 순서는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프레시안> 기획위원), 남종영 기자(<한겨레21>), 강양구 기자(<프레시안>), 박승옥 대표(시민발전), 정혜진 기자(<영남일보>)의 강의 순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강의의 시작은 '석유 생산 정점(Peak Oil)을 다룬 교육방송(EBS)의 다큐멘터리였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석유 시대'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경고하고 있었다. 샴페인을 석유로 비유할 때 전체 10병의 샴페인 중 이미 7병을 마셔버렸고 지금은 3병 가량 남아있다는 내용이었다. 15분가량 다큐멘터리를 본 후 본격적인 김재명 기자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김 기자는 우선 그림을 하나 보여주었다. “No blood for oil”이라는 문구 아래 지구가 커다란 방독면을 뒤집어쓰고 있는 그림. 평화운동가, 환경운동가들이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며 사용한 것이란다. 김재명 기자는 알제리 출신의 전 석유수출국기구(OPEC) 사무총장의 말을 빌려 무엇보다 '석유'가 이라크 전쟁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말한다.

“석탄, 석유는 확대 재생산이 되지 않습니다. (…) BP(British Petroleum)의 연감에 따르면 2005년 말 현재 석유가 1조2007억 배럴 정도 묻혀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생산량과 소비량을 견줘 볼 때 정말로 거대한 유전이 태평양, 대서양 밑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면 산술적으로 40년쯤 후면 석유가 바닥난다고 합니다.

(…). 석유는 중동에 전 세계 매장량의 60%, 즉 3분의 2 가량이 묻혀있고 유럽에 12%, 아시아에는 겨우 3% 가량 있을 정도로 지역 편차가 큽니다. 중동의 석유만 놓고 보면 40년 후일 수도 있지만 유럽, 미국의 석유는 10년이면 바닥입니다. 여기에서 영국, 미국이 주도하여 이라크를 침공한 이유가 무엇인지 유추할 수 있지요.”

2005년에 나온 미국 에너지부 보고서는 전 세계적으로 석유 생산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석유 부족의 시작을 2015년으로 보고 있다. 그 시간은 현대 기술 문명에게 주어진 운명의 시간이기도 하다. 특히 전 세계 석유의 4분의 1을 소비하는 미국의 경우 상황이 더욱 급박하다. 자체 매장량은 (산술적으로) 12년 후면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석유 공급 상황은 미국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주요 산유국 중 베네수엘라, 이란, 이라크 등은 미국에 적대적이(었)고, 사우디아라비아와는 9·11 테러 이후 관계가 불편해졌다. 이런 사정 탓에 부시 행정부는 안정적으로 석유를 공급받을 수 있는 대책으로 대규모 유전을 손에 넣고자 대량 살상 무기를 명분삼아 이라크와 전쟁을 벌인다. 김 기자에 따르면 이는 이미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부시 행정부는 2001년 딕 체니 부통령으로 하여금 국가에너지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면서 미국의 에너지 공급 능력을 확충하고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곧 미국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국의 안정적인 석유 수급에 만전을 다하겠다는 의지의 한 표현이었다.

석유의 안정적 확보에 대한 미국의 의지는 이라크 침공 직후부터 확인됐다. 미국은 이라크의 다른 모든 공공기관의 약탈은 방조하면서 석유 수급과 관련된 석유부에는 곧바로 대규모의 병력을 투입해 보호했다. 또 영국, 미국 정부는 친미 정부인 알 말리카 이라크 총리와 '생산 분배 협정'을 맺었다.

이것은 영국과 미국의 석유 기업이 유전 개발을 할 경우 최장 30년 동안 유전 개발에 들어가는 초기비용, 투자비용을 회수할 때까지 이권을 보장해주는 협정이다. 이 경우 이라크 석유 수입의 75%가 영미 석유 기업에 돌아간다. 김 기자는 '국제분쟁 전문기자로 활동하면서 가장 어이없었던 전쟁이 무엇이냐'라고 묻자 “단연 이라크 전쟁”이라고 답했다.

비단 이라크 전쟁뿐만이 아니다. 석유는 자연을 파괴하고 목숨을 앗아가는 많은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미국이 2차 대전에 참여하게 만든 진주만 폭격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전쟁은 미국이 일본에 석유 제한 조치를 취하자 일본이 활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일으킨 것이다.

또 1991년 발발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1994년 시작된 체첸 사태도 석유 자원을 차지하고자 벌어진 전쟁이었다. 쿠웨이트 전쟁은 석유 매장량 3위인 이라크가 매장량 2위 쿠웨이트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었고, 체첸 사태는 석유 운송의 중추 기지이자 러시아 석유 생산의 5%를 차지하고 있던 체첸이 러시아로부터 독립하려 하자 러시아가 체첸을 침공하면서 벌어진 것이다. 김재명 기자는 앞으로 상황은 더 심각해 질 것으로 예상한다.

▲석유를 둘러싼 전쟁을 비판하는 포스터 ⓒ프레시안

“2015년에는 전 세계 석유생산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상황이 온다고 합니다. (…) 2015년이든 2010년이든 석유는 더욱 귀중한 자원이 될 것입니다. 강대국들이 산유국들을 상대로 침략 전쟁을 벌이게 될 가능성도 크죠.”

김재명 기자는 강의와 함께 몇 장의 포스터와 사진을 보여주었다. 석유를 둘러싼 전쟁을 주제로 한 자료 중 유독 한 장의 포스터가 인상 깊었다. 젊은 군인의 죽음을 상징하는 많은 묘비가 있고 묘비 맨 앞에 주유기가 놓여있는 사진이었다. “Another generation Betrayed.” 석유를 둘러싼 전쟁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젊은이를 추모하며 석유를 둘러싼 전쟁과 탐욕을 비판하는 포스터였다.

미국 내에 절대로 짓지 않는 정유 기지

김재명 기자는 석유 기업의 정유소 건설도 비판했다. 김 기자에 따르면, 석유 기업은 갈수록 석유 가격이 올라감에 따라 매출을 크게 늘려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과 유럽의 석유 기업은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 지역에다 정유 설비를 확충하는 데 커다란 관심을 보인다.

석유 가격이 1배럴당 20달러로 안정을 유지할 때는 정유 사업의 수익성은 높지 못했다. 물론 적자는 아니었지만 정유소가 소비자 근처에 있어야 수송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뒤 석유 가격이 거의 3~4배로 치솟으면서 기업 환경이 달라졌다(2002년 당시 1배럴당 25달러 선이었으나 얼마 전 유가는 한 때 100달러를 기록했다).

고유가로 말미암아 해외에서 정유 제품을 들여오는 데 비용을 따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해외 정유소 건설에 앞장서는 대표 기업이 미국계 석유 기업 셰브론텍사코이다. 이 회사는 인도 릴라이언스 그룹과 합작 계약을 맺고 인도 북서부 파키스탄 접경 연안 잠나가르에 60억 달러를 투입해 세계 최대 정유 단지를 세울 참이다.

김재명 기자는 정유소 건설이 환경파괴로 이어진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석유 기업은 지난 30년 동안 정유소를 단 한 곳도 미국 안에 세우지 못했다고 한다. 그것은 환경오염을 걱정하는 미국 내 환경단체의 압력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자국 내에서 지을 수 없는 시설을 아시아에는 버젓이 대규모로 짓는 그들. 그렇다면 아시아가 미국 석유 기업의 쓰레기 처리장이 돼도 괜찮다는 것인가.

석유, 재앙인가 축복인가

강의 후반부에 김재명 기자는 2005년 한국을 다녀간 세계적인 환경운동가 프란츠 알트 박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알트 박사는 우리 인간이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만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알트 박사는 후발 산업 국가의 석유 소비가 늘어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진 산업 국가가 석유 소비를 줄이려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우리 인간이 지구의 자연환경을 파괴함으로써 스스로 무덤을 타고 있다고 비판한다. 알트 박사는 석유나 석탄을 아껴 쓰는 방안의 하나로 태양 에너지를 꼽으며 이렇게 말했다.

“태양 에너지는 완전히 공짜다. 태양은 우리에게 청구서를 보내지 않는다. 태양은 우리가 1년 소비하는 에너지의 1만 5천 배의 에너지를 보내주고 있다. 이를 활용하는 것이 석유로 말미암은 폐해(전쟁과 환경파괴)를 막을 수 있다.”

김재명 기자는 다이아몬드의 구매 대금이 아프리카에서 내전을 일으키고 양민을 학살하는 군부의 자금으로 흘러들어가는 실제 상황을 묘사한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를 이야기하면서 '블러드 오일(Blood Oil)'을 이야기했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주유소에서 넣는 기름이 누군가 피를 흘려 얻은 '피 묻은 석유(Blood Oil)'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조금은 섬뜩하지만 분명 사실인 그의 말은 나 이외의 세상에 무관심한 나의 무관심을 꼬집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는 덧붙여 피 묻은 석유를 둘러싼 전쟁이 불발탄이나 지뢰 등 '전쟁 쓰레기'를 남기면서 하나뿐인 지구촌 자연환경을 더럽혀 왔음을 이야기했다. 아울러 우리 인간의 석유 소비 행태가 자연환경 파괴 정도를 더욱 높여 왔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김재명 기자는 석유와 그를 둘러싼 전쟁 그리고 환경파괴를 2시간 남짓 이야기하며 우리에게 '석유가 우리 인간에게 축복인지, 아니면 재앙인지&' 끊임없이 질문했다. 석유시계는 쉬지 않고 0시를 향해 돌아간다. 마지막 석유 한 방울이 고갈되는 위기의 시간인 0시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석유가 유한한 자원임을 잊고 석유를 펑펑 써댄다. 김재명 기자는 그런 사람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석유 위기를 실감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