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교육] 3. 설악산에서의 야생동물교육 길라잡이 현장교육

2008년 8월 20일 | 야생동물길라잡이, 활동후기

 

야생동물교육 길라잡이 현장보고

하늘색 초록색 숲옷감 여미시는 설악산 어머니의 우직한 어깨 위로 구름이 지난다. 지리산이 어머니 치맛폭 같았다면, 내설악 가장 내밀한 이 곳은 산양을 품고 있는 설악산 어머니의 저고리 같은 곳이다. 두 시간을 걸어 올라오는 백담사 입구, 아직 비는 한 두 방울이었지만 비를 예감한 산숲은 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저녁예불을 알리는 스님이 울리는 나무물고기, 목어도 소리없는 구름을 자꾸만 피어올리고, 어둑해지는 절방 안에서 작은뿔 박그림 선생님의 슬라이드 강의가 시작된다.

복원서식지가 아닌, 오랜 옛날부터 살아온 산양의 산. 그러나 지금은 거의 마지막 남은 보호서식지의 중심이기에 더 소중한 설악산. 설악산어머니와 산양형제는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아름다움과 아픔의 운명을 같이하고 있었다. “하루 만명의 등산객이 찾아옵니다. 여러분 집에 날마다 백명씩 손님이 찾아오는 셈입니다. 입산예약제가 정착되야겠지요. 그리고 굳이 설악산에 오지 않아도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합니다.”

초록창틀도 꺼지고 밤이 깊어지면서 빗소리도 깊어지니, 내일 저렇게 산양의 쉼터를 방문할 수 있을 가능성도 점점 희박해지고 있지만, 작은뿔 맏형제로부터 설악산과 산양을 만나고 있었다. 내친김에 설악너머 비무장지대 고진동계곡과 러시아 라죠브스키 보호지구와 알래스카까지.


뒤이어 야생동물 수의사 김영준 님의 강의. 우리나라 사람만 구글어스의 중심에 한반도를 두고 찾는 건 아닐지 모른다. 지구를 여행하는 야생동물들 특히 철새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중간기착점이자 오아시스 같은 정거장이자 삶터이다. 아, 외래종이니 침입종이니 하면서 묘하게 민족의식과 결부시켜 생물종을 대하는 자세도 잘못된 것이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우리는 수입만 하는 게 아니라 수출도 하니까. 지구, 그리고 남한, 그리고 수도권, 그리고 작은 동식물들, 그리고 더 작은 동물체 바이러스까지, 김영준 수의사님이 보여주는 지구. 그리고 지구 가이아를 유지하는 세가지 다양성의 지지대. '유전적 다양성, 종 다양성, 서식처의 다양성' 최근 발생한 인수공동전염병들의 사건일지를 표시하는 점들이 점점 옮겨가며 퍼지는 것을 보여주시면서, 이것이 새만금 간척사업이나 태안기름유출사건 등 최근 인간들이 저지른 서식처 파괴에 원인이 있음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이를테면 새만금에 서식처를 줄여놓고 종다양성을 바라는건 말이 안되는 거죠.”

더구나 새만금을 찾아오던 수많은 동물, 특히 조류들이 이제 다른 인근 지역으로 옮겨가 AI(고병원성조류인플루엔자)라도 걸린다면, 그건 종의 멸종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현실. AI가 철새가 원인인양 방송에선 떠들지만 실은 인간의 집약산업환경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너구리 광견병같은 밀도우점성질병도 결국 서식처를 좁아들게 만든 인간에게 그 원인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폭발적인 이동은 가축이나 야생동물의 교역과 밀수도 그에 한 몫하고.. 더구나 신상전염병들 – 에이즈, 사스, AI, 광우병과 같은 신종바이러스는 80% 이상이 인수공통전염병, 즉 동물에게서 인간에게로 옮기는 병이며 대부분 걸리면 죽는다는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인간이 원인 제공하고 야생동물을 매개로 다시 인간에게 그 피해는 돌아오고 있었다. 멸종의 운명도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영준님의 말대로 어느 동물이냐 어느 철새가 원인이냐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엉뚱한 마녀사냥식 야생동물탓을 하고 있었던 거다. 진짜 범인은 '미필적고의'를 저지르고 있는 인간.

새만금 방조제 공사 전후의 이 사진을 나란히 보여주며 읊조리시는 한마디 “단순화 속에 무슨 생명이 있겠습니까?”

다친 야생동물 사례 사진도 보여주며 수의사로써의 경험도 들려주셨다. 숲이 반사된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힌 새들. 머리가 작고 눈이 큰 새들은 머리를 부딪히며 뇌진탕과 함께 동공이 망가져 버린다고 한다.. 이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방법도 소개해주셨다. 비닐봉지를 쓰지 않는 것도 야생동물이 당할 수 있는 치명적인 사고를 줄일 수 있는 중요한 실천이라는 사실도.  


야생동물수의사라는 예사롭지 않은 직업을 가진 김영준 님과 한집살림을 하고 계신 황윤 감독. 그녀 또한 야생동물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흔치않은 직업.
여는마당 때 함께 길의 윤리를 생각케 한 영화 를 만든 황윤 감독은 “이제 만물이 소수자 입니다” 라고 말한다. 팔팔이처럼 로드킬을 당하고 있는 야생동물들..”이들이 효순이 미순이와 다를 것이 무언가. 희생되고 짓밟힌 생명들, 소수, 약자. 인간은 울어준 이라도 있었지만 이 야생동물들은…” 그들을 위해 울어주고 대변해주는 이였다. '대상화'하지 않으면서 영화를 찍기는 어려운 일이겠지만 야생동물을 무책임하게 대상화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려 하고 있는 이다.

야생동물 3부작의 1부로 일컬어지는 야생동물 다큐 '작별'은 슬픈 동물원에 대한 이야기다. 아이들이 가장 먼저 동물을 만나게 되는 동물원은 오히려 인간중심적인 시각을 강화하고 있다는 고발. 아이들 교육을 위해 간다지만 인간이 마음대로 다른 종을 가둘 수 있다는 걸 가르치는 반교육적인 장소라며, 본래 동물원은 '현대판 노아의 방주'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호소력 짙은 황윤 감독의 눈빛이 야생동물을 대변하는 샤먼처럼 느껴졌다. “야생동물이 괴수처럼 묘사되는 영화들은 야만과 야생을 헷갈려하는 것이며 오히려 문명이 야만이다.” 애완이 아니라 반려동물이라는 것. 자연다큐에서조차 ('전지'에 가까운 듯) 인지적 인간은 동물을 자연관찰적인 지식의 대상으로 보고 있으며, 또는 ('전능'한 듯한 착각?) 보호의 대상으로 동물을 대하고 있다는 것. 매체를 통해 내 눈을 통해 바라보는 동물들. 거꾸로 야생동물들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 지구 가이아의 경계없는 눈으로 볼때 인간의 시선이란게 얼마나 좁은 눈을 하고 있었는가 무릎을 치게 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알약을 먹고 난 기분이랄까. 다큐'작별'에 나왔던 크레인을 'TV동물농장'에서 찍어 내보낸 적이 있는데 귀여운 것도 모자라 억지로 우스꽝스럽게 '연출'하기도 하고, 많은 동물 영화나 다큐가 괴수가 되거나 아동화 되어버린다는 사실. 아이들과도 토론을 벌여봐야겠다.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밤내 비는 무심히 내려 결국 비박의 부푼 꿈을 접기로 하고 회의를 통해 내일의 일정을 정했다. 자연의 사정대로 맞춰 바꾸고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인간의 계획도 자연 앞에서는 이렇게 맥이 없다.  


다음날 아침 산양연구소를 찾았다. 올때마다 조금씩 내부가 채워지고 있는 이곳 산양연구소가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소주에 컵라면에 오염의 온상이었던 백담산장 시절을 기억하니 새롭다. 박제가 잘못됐다는 지적을 시작으로 질문가 답이 오가다가 김영준 수의사님의 즉석 강연이 시작됐다.

산양일까 고라니일까? 풀에 난 토끼 이빨자국과 달리, 아랫니만 있고 윗니가 없이 풀을 뜯어먹는 유제목 우제류가 뜯어먹은 풀은 이빨자국이 나지 않는다고. 윗니를 대신하는 치판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히어리 사라씨.  


자, 복습. 뛰기 좋게 다리도 길어지고 발바닥을 들고 발톱으로 걷게 되면서 발굽이 된 발가락들이 이렇게 자리잡혀서 쪽발짐승이 되었다는 것. 약지까지 접으면? 말의 발이 되는 것.  


얼레지 주연씨가 뿔났다? 사슴뿔이 어떻게 생겼는지 헷갈린다면 바로 요렇게~ 따라해보세요. 김영준 수의사 님의 간단한 동작에 모두 따라하며 이 재미있는 동작도 어서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진다. 알면 재미있고 사랑하게 되어서 혼자만 알기엔 아까운 마음이 차오르기 마련.

김영준 수의사님이의 사슴 뿔 강의가 이어진다. 뿔이 만들어지기 위해 칼슘, 미네랄 섭취가 필수. 그 때문에 라죠브스키 해변에 꽃사슴들은 호랑이가 어슬렁거리고 있어도 죽음을 감수하고 바닷가에 간다고.

너구리 두개골과 개를 구별하는 건 턱힘줄이 가득 찼던 넓은 관자놀이 자리. 닥치는대로 먹는 청소동물 너구리는 턱힘이 좋다. 야생동물의 생김생김과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모두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생긴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여.”  


산양연구소를 나서려니 비가 떨어진다. 맑고 투명했던 수렴동 계곡, 물이 엄청나게 불었다. 불은 물기둥이 뒤엉키며 내는 포효하는 물소리. 산양에게로 가는 대승골은 물길로 가로막히고. 이 물길 가운데도 전에는 소나무 숲이었다고 한다. 수수깡처럼 넘어져 떠내려 온 나무들을 정리한다고 군데군데 나무를 잘라 쟁여놓은 인간의 손길은 품삯이다. 지형을 바꿔놓는 물길. 자연의 흐름은 이렇게 때때로 거대하다.  


가려진 저 건너 바위틈에 쉬고 있을 산양을 비구름 속에 바라보며. “다음에 만나자” 기약하고, 네발로 기어오르는 산양의 길은 막혔지만 대신 길골로 들어섰다. 두발이지만 겸손하게 앞발을 구부리게 하는 숲길. 숲에서는 네발이 되면 더 편하다.

전나무 대문을 떨치고 들어가니 촉촉한 숲이 펼쳐진다. 세월을 안고 가로 쓰러진 나무들 곁에 피어나는 버섯꽃들이 화려하다. 잉무든 땅옷을 입은 채 이렇게 곱게 죽음을 살 수 있다면…죽은 나무 등걸을 들여다보면 아주 작은 푸른 숲이 더 작은 동물들을 품고 있다. 이끼와 버섯 그리고 작은 곤충들, 숲의 시간을 돌려놓는 작은 동식물들. 길골을 찾는 포유류들이 우리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달아나 버린 사이 물두꺼비가 대신 비마중을 나왔다.  


보석도 같고 초코볼도 같은 누군가의 똥을 파랑 소양 샘이 세어보고 있다. 몇알쯤은 먹고 싶을지도.

한둔에 대비해 준비해온 주먹밥을 먹으려는데 어딘가에서 킁킁 냄새가 풍겨온다. 우리가 오기 전에 멧돼지도 식사를 하고 무언가 부려놓았다. 나뭇가지에 똥을 찔러 냄세를 맡게 해주시는 그림샘의 센스에 돌아가며 킁킁 냄새 맡고 물음표 표정들을 짓기도 하며 마주 웃었드랬다.  


길어 길골, 긴 골짜기 옆으로는 이렇게 넉넉하고 편한 길과 터가 있다. 편한 길이라 온갖 야생동물들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몇 녀석은 우리의 모습을 어딘가에 숨어 지켜보고 있을지도.

화전민의 돌담. 물이 있고 머물기 좋아 야생동물이 즐겨찾듯 화전민도 이곳에 깃들었더랬다. 80년대 박대통령 시절 쫓겨내려온 삶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누군가 벗어놓은 깜장고무신, 무언가 소중한 것을 다물고 있었을 자물쇠와, 열쇠없이도 이를 열어보려는 녹슨세월의 소리없는 다툼, 한국전쟁 때 쓰였다던 세발수류탄이 물고 있는 안전핀이란 것도 허술해져서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지난 울음을 터뜨릴지 모르니 조심할 것.  


네발짐승이 된듯 숲을 거닐다가 인간의 길로 접어들면 다시 두발로 선 인간이 되고 만다. 수해에 대비해 너무 높이 박아놓은 데크 길을 지나 내려오며 편한 길에 길들어가며 다시 인간의 발이 되는 걸 실감한다. 팬더 서명순 샘, 등산화라도 벗자. 뛰어들어 가늠하며 걷는 맛이란 이런 것. 가늠되지 않는 숲길과 물길이라면 과감히 다음으로 연기하시라. 시간과 자연은 언제나 더 멋진 길들을 준비해놓고 있을테니. 주변에 계시던 다른 분들이 우리의 티셔츠를 보고 외치신다. “맨발로 걸어라!” 네발로가 맨발로… 그거 말 되네. ^^  


가을 설악을 기약하고 양구에 있는 산양증식복원센터를 찾았다.
늘 볼 수 있는 게 아닌데 먹이활동 시간도 아닌 이때에 우리를 알아봐줬는가 운좋게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줬다. 깊은 애정을 가지고 이 복원센터를 만드신 정창수 의원님의 설명을 들으며 산양을 눈앞에 마주하는 길라잡이들의 표정이 한결같이 흐뭇한 표정이다. 아득한 먼 시간을 그대로 간직한 동물인 수묵화같은 산양아. 그렇게 있어줘서 그저 고맙다.  


보란듯이 달려와 계단을 지나 숲으로 달아나는 산양. 우리집에 앞에도 이렇게 지나가주었으면.  

▲ 멍멍이 최서윤 님의 노트.



담비가 우릴 좋아할까? 하던 나무늘보 최재형 님의 말대로 올무에 걸린 걸 구해와 잠시 보호중인 노란담비가 겁에 질러 소리를 질렀다. 사람에 대해 경험적으로 갖게 되는 공포와 분노어린 표정과 날카로운 울음, 불안한 움직임..


아직은 박제와 철조망이 아니면 마주하지 못하는구나. 미안하고 고맙다 야생동물들아. (지못미..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비 때문에 아쉬운 점들이 있었지만 보다 깊이 야생동물과의 공존에 대해 생각하게 한 설악산에서의 교육.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는 비도 점점 거두어지고 무지개가 떴다. 무지개는 약속이랬던가. 야생동물들을 위해 뭔가 약속을 할 게 있다고 알려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