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교육] 2. 지리산에서의 야생동물교육 길라잡이 현장교육

2008년 8월 13일 | 야생동물길라잡이, 활동후기

 

야생동물교육 길라잡이 현장보고

작렬하는 햇살을 예고하는 타오름달 팔월 첫새벽 눈비비고 일어나 새벽이슬 떨고 일어나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야생의 동물이거나 야생동물을 닮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이들이 각도각지에서 한곳한시 대낮 뙤약볕 내리쬐는 지리산에 이들이 모인 이유는? 일제시대 금서였던 안국선의 첫 장면이 겹치듯 떠오른다. 남들은 영어몰입교육으로 어학원이다 영어캠프다 하여 몰려가는 이 시기에 이들은 야생동물몰입교육을 하러 모였더랬다. 지난 최현명 선생님의 강의 칠판에서 네발로 걸어 나온 야생동물들이 몽고를 달리고 백두산 넘어 백두대간을 남으로 내달려와 너른 어머니 치마폭에 숨어들었으니, 이곳은 3도 5군에 걸쳐 남도의 배꼽에 자리한 지리산.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처음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운영되어온 지리산국립공원의 남부지역은 우리나라 야생동물교육이 가장 처음 시도되어온 곳이기도 하다.  

 

한국야생동물수난사를 떠올리다

지난 여는마당에 있었던 최현명 님의 강의를 떠올린다. 마지막 야생동물 포수와 목격담을 찾아 직접 인터뷰하고 희귀자료를 모아 준비해주신 귀한 강의 – 한국야생동물멸종의 역사. (최현명님은 에 야생동물과 흔적 그림을 상세히 그린 이 이기도 하다.) '왜 우리는 야생동물과 공존해야 하는가?' 근본적인 물음의 첫 시작은 지리산-설악산-백령도의 현장탐사에서도 내내 이어졌다.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서 만난 회수곰 천왕이

사람도 동물들도 넉넉히 살만한 곳, 지리산 남부사업소 건너에는 멸종위기종복원센터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먼저 맞딱뜨린 건 철장 안에 회수된 곰 천왕이가 더위에 지친 표정으로 철장 바로 앞 작은 또랑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모습이었다. 헥헥거리면서도 종종 시선을 맞추며 뭘 주려나 하는 이 반달가슴곰은 작년까지만 해도 방사된 몸이었다. 그러나 등산객들이 던져주는 먹이에 야생성을 잃고 회수되어 지금은 치과치료를 받으며 임플란트 값을 걱정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옆 철장의 다른 곰은 사람에게는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쉴세없이 왔다갔다하는 반복행동을 하는 등 이미 스트레스를 상당히 받은 것 같았다.

야생의 지리산의 충분히 안전하게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곰에게 야생곰이 되길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은 바램일 뿐, 어쩌면 천왕이는 도로와 훼손으로 서식처가 좁아들고 등산로와 셋길에서 수많은 등산객을 자주 맞닥뜨리게 되는 지금의 지리산의 상황에 나름의 적응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한번 회수된 곰은 다시 야생으로 방사할 수 없다지만, 부디 동물원의 곰보다는 스트레스를 덜 받기를.

옆 야외사육장에는 작년까지만 해도 첫 방사곰 장군이가 있었지만 작년 12월 장군이가 죽고 지금은 보수공사중이다. 울타리 탈출을 방지하기 위해 미끄러지는 아크릴벽이 설치되고 있다. 다 큰 곰이 쉼터이나 놀이터인 '상사리'를 만들기도 하던 나무들은 열그루 스무 그루쯤 넉넉해보이지만, 꼭대기까지 곰의 영역 흔적으로 닳아있다. 여느 야외사육장 못지 않은 세심한 환경을 자랑하는 곳이지만, 한 마리의 다 큰 곰이 몇 년간 서식하기 위해서는 더 품넓은 숲이 필요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리산에 반달가슴곰이 산다는 말이 뜻하는 건

복원연구팀장 이배근 님이 곰복원사업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다. 훈련부터 방사까지 그리고 회수된 곰들에 대한 이야기들 속에 애정이 그대로 묻어난다. 이름을 하나하나 붙여줄 만큼 애정이 가득하지만 이제는 곰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고 번호로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사소한 부분이라도 인간의 시선으로 곰을 바라보고 대하는 것을 바꿔보겠다는 의지다.

지금까지 방사됐던 28마리의 반달가슴곰 가운데 4마리는 야생으로 적응하지 못해 회수됐고, 6마리가 죽었는데 그 가운데 3마리는 올무에 걸려죽었다고 한다. 최현명 님이 지난 강의에도 말씀하셨듯이 이배근 님도 무엇이든 잘 먹고 특별히 예민하지 않은 동물인 반달가슴곰 정도는 지리산에 몇 백 마리쯤 살고 있어야 자연상태에선 정상적인 일이라는 같은 말씀을 하신다. 그런데 이렇게 힘겹게 복원의 과정을 겪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다른 종에게 곁을 내주지 않는 인간의 어리석고 이기적인 마음 때문은 아닐까. 그 때문에 자연상태의 지리산이 아닌 개발가치로 제도된 인간의 지리산에서의 반달가슴곰을 복원한다는 것은, 곰이라는 한 종의 복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지리산 생태계의 복원’을 의미하는 것이다.  

반달가슴곰팀으로 불리던 종복원사업 초기 이곳에서 근무하신바 있는 최태영 박사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종복원팀이 반달가슴곰팀으로 불리던 사업초기 이곳에서 근무하신 바 있는 박사님은 발신기 추적장치를 시연하며 설명해주셨다. 방사하는 반달가슴곰 귀에 부착되는 발신기는 혹시 맞닥뜨린 곰이 사육장에서 탈출한 곰곰이나 야생곰이 아닌, 방사곰임을 알 수 있는 표식이기도 하다. 모두 1:1 주파수가 있어 이 신호음을 쫓아 삼각법을 이용하여 곰의 위치를 알아내는 원리다. 첨단과학이 아닌 단순한 방법이지만 그만큼 발로 뛰며 추적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가장 정확하게 곰의 상태를 추적할 수 있다고 하신다. 레이다보다 정확 할 바로 이런 기술이 적정기술일 거다.

지리산 주민과 반달가슴곰의 공존을 모색해야할 때

“어차피 지리산이 지역주민과의 접경지대인 만큼, 지역주민과의 갈등부터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위로부터 사업이 정해져서 어느 날 갑자기 주민들에게 곰복원 하기로 해서 풀어놨으니 협조해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잖겠는가. “오히려 지역 공청회를 열어 우리마을에 곰이 산다는 것은 자연환경이 우수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자연적 가치 경제적 가치도 함께 뒤따라 올 수 있게 제도적인 마련을 해준다면 우리고장에서 곰복원을 하겠다고 나서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이 문제가 풀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새 해법도 제시하셨다.

지리산에 곰도 지역주민도 서로 갈등보다는 공존으로 풀려가길 바래본다. 이번 교육과정의 필독서 가운데 하나인 에서 보듯 일본 시레토코의 자연과 지역주민처럼 옛 지혜를 되살리는 첫사례가 바로 이곳 지리산이 되는 그날이 오기를.  

올무를 직접 시연해보시는 또한 분의 야생동물을 쫓는 지역의 토박이 전문가 최천권 선생님. (그는 청년시절부터 수십년간의 경험을 사이사이 들려주시며 지리산 현장에서 이끌어주셨다.) 감자폭탄도 끔찍하지만 간단해 보이는 와이어 올무도 빠져나오려 하면 할수록 발목이 조이고 허리가 졸려 결국 다리가 잘려나가거나 내장이 파열되는 결과를 낳는다.

종복원팀의 업무 가운데 또 하나는 주민들의 민원해결이라고 한다. 특히 곰은 꿀에 집착하는 습성을 가져서 한번 벌통에 손을 댔다 하면 천만 원 대에 이르는 손해도 입힌다고 한다.

밤농사를 많이 짓는 지리산이라 유난히 벌통이 많아서 곰도 습성대로 손이 가는 걸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지리산 곳곳밤숲에는 흰 깃발이 꽂힌 것을 볼 수 있는데 농약 뿌리는 비행기가 뜨면 이곳에 뿌려달라는 표식이다. 생각보다 흰 깃발은 곳곳에 있고, 여전히 무차별적인 살충제가 뿌려지는 현실이다. 더구나 알토실 밤이 많으니 멧돼지도 오고 멧돼지가 있는 밤숲에는 여지없이 올무가 따라 깔리고 멧돼지 올무에는 곰도 잡힌다. 꿀과 올무가 함께 덫이 되는 이런 지역에 곰을 방사하며 야생에 적응해 살라고 하니 곰도 이래저래 고충 많은 건 지역주민이나 복원팀직원들이나 곰이나 마찬가지다. 작물에 피해를 준다면 아예 그 동물이 좋아하는 먹을 거리를 키워내는 지역을 인근에 따로 설정해 그곳으로 모이게 하여 주민의 작물을 관리하게 하는 독일의 방식도 써봄직하지 않나 싶다.  

숲은 야생동물에게 무엇인가, 야생동물은 숲에게 어떤 존재인가

뒤이어 숲해설가 양경모 선생님의 질문지가 주어졌다. 지금까지 숲은 야생동물에게 무엇인가 하는 시점으로 주변을 살펴보았다면, 시점을 거꾸로 뒤집어 하는 질문, '숲에게 야생동물은 어떤 존재인가'. 질문지는 간단했지만 답은 쉽지 않았다. 그 질문은 숲에게 그리고 야생동물에게 인간은 나는 어떤 존재인가 하는 질문으로 옮겨갔다. '이 숲은 건강한가' ,'숲과 동물의 개체수가 급격히 늘거나 줄었을 때 인간의 개입이 필요한가 아닌가' 하는 질문지도 다른 질문의 가지를 파생시키며 커나갔다. 정답이 있는 건 아니겠지만 여러 물음표와 느낌표들을 주고 받는 참가자들.

모기가 많은 숲인데도 양경모 님은 밴발로 강의를 이어가셨다. 오감 가운데 우리는 겨우 시각만으로 숲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닌지. 틈나는대로 야생동물처럼 네발로 맨발로 숲을 느껴보자.  

현장교육의 짝, 실내교육의 활용

붉은 카펫 위에 카드놀이 삼매경에 빠진 이 광경은 최현명 선생님의 그림이 그려진 야생동물카드를 에코샵 홀씨 양경모 님이 이번 교육에 맞춰 만들어오신 것. 한국 야생동물들의 생태와 흔적을 읽어내는 최태영 박사님의 핵심강의 전과 후가 다른 결과란 바로 이런 것. 쪽집게 교육 후라서 교육효과가 바로 나온다. 다들 야생동물그림과 발자국과 똥을 맞추는 게임에 완전히 집중해서 맞히는 재미에 쏙 빠졌다. 이 게임을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기본교육을 마친 것이다. 이제 내일 현장에서의 실력 발휘를 기대하시라.  

다음날, 이른 새벽 숨쉬는 지리산을 배경으로 새벽밥을 먹고 주먹밥을 챙겨들고 성삼재까지 79굽이굽이를 돌아올라 일렁이는 구름바다를 건넜다. 노고단 숲으로 들어서자 야생동물의 세계가 가까워져왔음을 알리는 숲길이 펼쳐진다, 아침햇살이 숲사이로 빛커튼으로 쏟아진다. 조심스레 빛커튼 들어올리며 동물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숲길. 한 사람씩 숲의 신비속으로. (앞사람이 빛에 가려 안보이는 현상도)  

똥과 함께 야생동물과 함께 걷는 숲길

노고단 정상 바위에서 가장 먼저 우리에게 나타난 삵똥. 늘 환하게 잘 보이는 트인 곳에 똥을 누는 삵. 얼핏보면 그냥 트인 곳으로만 보이지만, 엎드려 삵의 눈높이가 되어 살펴보면 돌을 등지고 자기 몸이 가려지는 것을 확인하고 똥을 누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앞은 트이고 뒤가 막힌 자리에 쭈그려 앉아야 편안하게 똥을 눌 수 있나보다.

다음에 나타난 것은 푹 퍼지르듯 싼 오소리똥. 이때만 해도 기쁘게 오소리 똥을 보았으나 앞으로 걸으면서 나타나는 오소리똥똥똥…오소리가 활발히 움직일 때라는 최천권 선생님의 설명에 증거처럼 계속해서 나타났다. 이렇게 숲길따라 걷다보면 계속 반복해서 같은 종류가 확인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걷는 숲길을 이용하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라는 것.  

사람의 눈높이로만 숲을 더듬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야생동물의 눈높이로 바라보면 나타나는 수많은 숲의 증거들… 앗, 무릎높이에 나타난 누군가의 뿔질흔적! 가려운 뿔을 긁는 동물들의 습성은 자연스레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영역표시이자 숲생태계의 조절자 역할도 한다. 인간이 개입하기 이전에, 숲이 밀식되는 것을 막아준다고. (어제 숲생태와 야생동물에 대한 관계를 탐구했던 우리의 질문이 현장에서 풀리는 순간이다.)

나무 둘레를 재어보고 높이를 재어보니 이 뿔질은 다 큰 노루의 것으로 추측할 수 있었다. 뿔 사이 간격에 맞는 나무를 골라 자신의 키높이에 맞춰 뿔질을 했을 야생동물의 입장이 되어보면, 대입시킨 자아가 노루인지 아닌지 다 자란 성체인지 어린 개체인지 알 수 있었다.

이제 야생동물들이 만들어준 편한 숲길에서 벗어나 계곡부를 치고 내려간다. 헉헉 저기 돌과 나무를 뛰어넘는 것은 야생동물인가 사람인가? 이끼 낀 돌들이 흔들리고 미끄러지고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쏟아지는 길 아닌 길. 언젠가 산사태가 났던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이런 과정을 거쳐 다시 자연의 숲을 일궈낼 것이다. 우리는 거대한 자연의 시간에서 아주 찰나의 순간을 이렇게 지날 뿐. 산사태에 호들갑을 떠는 것은 성급한 인간 뿐이리.  

그나저나 이런 험한 길에 짐승이라고 좋아할까. 흔적도 별로 없겠구나 하며 내려가는데, 비탈사면에 실망말라며 풀로 위장된 어느 동물의 흔적이 나타난다. 이것은 그 유명한 '오소리똥굴'. 아래도 똥굴 위도 똥굴, 아파트를 이루고 있다. 이 비탈사면은 오소리씨의 타워팰리슨가보다. 너비가 20센티도 넘는 넉넉한 평수. 앞발로 판 흙굴에 똥을 싸놓고는 자신의 똥을 확인하러 집처럼 자주 온다는 오소리씨. 오소리씨의 똥굴에는 벌레 곤충들이 전세낸듯 살고 있고 이 작은 곤충들을 좋아하는 또다른 동물들이 찾아드는 작전이다. 오소리씨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맛있는 저녁상이 차려져 있는 셈이다. 전체요리로 너구리를 잡아먹을 수도 있고 작은 땃쥐나 없어도 곤충들은 실컷먹을 수 있으니, 오소리똥굴은 화장실이자 식탁이구나.  

숙소로 돌아와 두 모둠의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에도 저리 많은 야생동물의 흔적이 있었다니. 무용담에 가까운 경험담도 이어지고..  

동물들의 흔적을 통해 동물들의 삶을 읽을 수 있었다. 몇 시간의 경험이 값졌다는 증거.  

야생동물 교구 만들기, 익히기, 나누기

반달곰친구들 이윤수 님의 야생동물 교육교구 활용에 대한 교육이 이어졌다. 현장에서 다 보지 못한 다양한 똥 똥 똥도 다시 감상도.. 날마다 똥을 보지만 이때까지 살면서 이렇게 자세히 똥을 들여다본 적은 없었을 거다. 이제 날마다 오늘의 내똥은 어느 동물의 똥과 비슷하게 생겼나 들여다 보게 될지도. 맨발로 걷는다면 내 발자국도 살펴보련만… 발자국 틀 뜨기 시연이 있었다. 오늘 현장 교육에서는 비온 뒤라 발자국 흔적을 뜨기가 어려웠는데 마침 딱 필요한 교구였다. 똥과 함께 발자국은 야생동물의 삶을 말해주는 '발자취'이다.

점토에 찍은 이 발자국은 누구님의 앞발이 아니라 호랑이의 것. 실제로 현장에서 발견한 야생동물의 발자국은 이렇게 석고뜨기로 한번 떠 오면 점토에 찍어 복제가 가능하고 그 점토가 굳으면 다시 다른 점토에 찍거나 석고나 고무로 계속해서 복사가 가능하다. 여러 동물들의 발자취는 점토에만 새겨지고 있는 것이 아니리. 눈에 손에 감각에 마음에 발도장을 찍는다. 돌아가서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뒷산, 집앞 공원, 학교 같은 근교 현장에서 호랑이나 곰은 아니어도 쥐, 새, 청설모 같은 작은 발자국들을 찾아 함께하는 사람들과 발자국을 떠 봐야겠다.  

 

몸살림 운동으로 안개아침을 열면서 구례 남부 간전교 아래까지 수달서식지 보전지역으로 섬진강 탐사를 떠났다. 넓은 서식처를 필요로 하는 수달의 생태. 수달이 산다는 건 수달 뿐 아니라 강 생태계를 곁으로 다른 동물들도 살 수 있는 환경이라는 뜻이다.  

물길따라 섬진강에 닿으니 다시 야생동물의 터

가장 먼저 새들의 발자국이 먼저 눈에 띈다. 뒷 발가락이 찍히는 새는 나뭇가지를 붙잡고 앉아 생활하는 새, 앞 발가락만 찍히는 새들은 오리처럼 물에서 생활하는 새들이 많다고 설명해주셨다. 지느러미가 질질 끌리도록 긴 흔적을 남기며 간 수달 발자국, 그 옆으로 어지러이 많은 새 발자국, 하얀 새 똥에 앉아 미네랄을 섭취하고 있는 제비나비 한쌍도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섬진강에서는 여러 생물들의 생태계가 얽혀 있음을 느끼게 한다.

“빨리 걸을 수록 앞 발자국이 먼저 찍히고 뒷발자국이 이렇게 그 앞에 찍히는 것입니다.” 최태영님의 설명. 출산 경험이 있는 암컷은 골반이 벌어져 옆으로 비껴찍히고 상대적으로 뿔과 어깨가 발달한 수컷은 좀더 안쪽으로 겹쳐 찍히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상세한 흔적에 집착하는 것보다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야생동물길라잡이들에게 더욱 중요한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이신다. 앞발이냐 뒷발이냐보다 이곳에 어떤 동물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읽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리.  

아기 발자국처럼 생긴 족제비과 전형의 발모양과 함께 뭔가가 질질 끌린 흔적. 수달이다. 그런데 본래 수달은 꼬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약간 좌우로 구불구불 끊어지며 발사이로 찍히는데 이것은 너무 질질 끌린 모양이다. 아마도 입에 큰 물고기를 물고 지나가며 물고기의 지느러미같은 것이 끌린 것 같다는 최천권 선생님은 경험을 통해 노련하게 발자국을 읽어내셨다.

수달의 크기와 걸음걸이를 가늠하며 준비해온 투명판을 대고 발자국을 그린다. 무게가 나가는 큰 수달은 발자국 크기 뿐만 아니라 깊이도 더 깊이 찍히겠지. 발자국이 지나간 시간도 얼마되지 않은 것 같다. 오늘 아침 우리가 오기 전에 배불리 아침식사를 했을 수달을 떠올려본다. 모양과 함께 돌아가서도 기억하기 위해 발견시간과 장소 등을 기록하고.  

여는마당에서 보았던 야생동물 다큐 '어느날 그 길에서'에서, 로드킬 지점을 이으니 선이 되었던 충격적인 장면을 기억한다. 그 다큐의 주연배우(?)셨던 분들을 강사로 모시고 그 다큐의 배경인 구례 국도를 찾으니 묘한 기분마저 든다.

로드킬의 온상이었던 이곳 구례국도 아래 야생동물 생태통로가 마련되었다고 하여 찾았다.

오른쪽 위로는 오염원이 없는 지리산 계곡물이 내려오고 좌측 아래로는 섬진강이 닿는 도로 아래 이런 길이 야생동물에게는 좋은 이동통로가 되고 있었다. 물론 좀 더 섬세한 접근이 아쉬운 점도 있었다. 인간의 설계법 가운데 가장 큰 공통 오류, 직강화 수로. 문명과 달리 야생은 곡선을 좋아한다는 사실 잊지 말자.  

아쉬운 점이 없지 않지만 이 생태통로는 다른 행정면피용 생태통로에 비하면 성공한 케이스다. 성공한 야생동물이동통로의 증거인 고라니의 발자국. 조심성 많은 고라니가 새끼들을 데리고 지나다니는 영상이 최천권 선생님이 설치해놓으신 무인카메라에 찍히기도 했다.

최천권 선생님도 다시 한번 강조하신 말씀,
“야생의 흔적이 누구 것인지 알고 싶을 때는 하나의 증거만 살피지 말고 그 주변의 걷는 패턴이나 주변의 다른 증거들을 살피면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젤로 중요한 거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