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베리의 를 읽고/ 놀밥 전은정회원

2017년 8월 29일 | 녹색소식

<위대한 과업> 토마스 베리 지음/이영숙 옮김, 대화문화아카데미

토마스 베리의 <위대한 과업> 읽고

생태인문학책읽기모임 <놀밥> 회원 전은정

 

토마스 베리가 제안하는 ‘위대한 과업’은 근대 문명이 명확히 구분 지어 한쪽(인간)에게만 지나친 특권을 준 것을 비판하며 인간과 인간 아닌 것들이 예전처럼 다시 이어져 커다란 하나의 생명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모더니즘이 좋아하는 이분법은 늘 한쪽에 비해 다른 한쪽이 우위에 있는 것을 가정한다. 인간과 자연, 정신과 육체, 이성과 감성, 남성과 여성, 서양과 동양, 현대와 전통. 근대 문명은 다른 한쪽을 억압하거나 가치절하면서 화려한 업적을 쌓았다. ‘영성’을 공부하는 신학자이면서 중국 같은 동양문화에도 큰 관심을 가졌던 토마스 베리의 글은 읽다 보면 상당히 동양철학의 우주관, 인간관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우주의 어느 하나도 다른 존재로부터 분리될 수 없으며, 우주의 어떤 순간도 다른 순간들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는 토마스 베리의 말은 인간이 곧 우주고, 우주가 곧 인간이라는, 삶과 죽음이 결국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생명의 순환 고리라는 동양사상과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모든 것이 연결된 하나의 거대한 통합체, 생명공동체에서 인간 스스로 분리되는(소외되는) 것을 선택하면서 땅은 황폐해지고 지구의 운명도 위험에 빠졌다. 토마스 베리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인간이 다시 더 큰 지구 공동체에 통합될 것인가(단절된 관계를 회복할 것인가), 다양한 분야에서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책에는 흥미로운 단어들이 많이 등장한다. 인간이 만들어나가야 할(저자는 황홀한 비전이라 표현한다) ‘에코조익’이라는 말과 지구가독력(earth literacy)이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보통 ‘지구’ 차원의 문제는 나와 상관없는, 나와는 동떨어진 차원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내가 밟고 서 있는 구체적인 공간이라는 느낌이 없이 때문이다. 책 앞부분에서 저자는 ‘자연의 책을 읽는 법’이라는 표현을 쓴다. 지구가독력과 연관된 말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자연을 인간과 구분되는, 개발이나 이용의 대상으로만 인식한다. 내가 ‘지금 이곳에서’ 관계 맺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매일 밟는 땅, 매일 먹는 채소, 매일 보는 하늘, 매일 먹는 물, 우리는 늘 구체적인 장소, 구체적인 자연과 만나고 있는데 그것을 읽고 상호작용하고 교감하는 방법을 모른다. 아마도 저자가 이야기 하는 위대한 과업을 이룩하려면 일상적인 차원에서 이런 ‘자연의 책을 읽는’ 행위 ‘지구가독력’을 높이는 행위들이 실천되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책의 뒷부분에서 “우리 시대의 역사적 사명은 종의 차원에서 인간을 재창조하는 것”이라 했다. 마지막에 언급한 ‘네겹의 지혜’가 모더니즘이 무시했던, 이분법적 구분에서 ‘가치가 없는 영역’에 분류되었던 곳에 있었던 것들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인간에게 부여된 특권적 지위를 내려놓고 지구(우주)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의식을 갖게 하는, 인간 ‘재창조’ 작업은 ‘인간 아닌 것들’을 돌아보고 재규정하고 다시 연결하는 일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토마스 베리의 글은 구구절절 맞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여전히 손에 닿지 않는, 나와는 거리가 먼 추상적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지구가 통합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기업 활동이 이윤추구를 주된 동기로 해 이루어지기보다 생명공동체에 주로 관심을 기울이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토마스 베리는 주장하지만, 과연 이게 현실에서 가능한 이야기일까, 강력한 의구심이 생긴다. 근대문명에 대한 반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생태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느끼는 것은 미래에 ‘혁명’이라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공산주의자가 아닌 생태주의자들이 이끌 것이라는 사실이다. 여전히 인간중심주의는 왕좌를 내려놓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자본주의는 여전히 틈 없이 견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체계에 미세하나마 균열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위대한 과업’을 꿈꾸는 생태주의자들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