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시장바닥서 파는 생선입니까?/정일근 시인

2015년 7월 28일 | 녹색교육문화소식, 녹색소식

고래가 시장바닥서 파는 생선입니까?

글 정일근

저는 시인입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지만 고래와 무관한 전공입니다. 고래를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말씀 드립니다. 울산에 주소를 둔 1992년 뒤로 ‘고래의 파수꾼’으로 살고 있습니다. 울산광역시는 자칭 ‘고래도시’입니다. 국보 제285호인 반구대 암각화 속의 고래부터, 천연기념물 제126호인 귀신고래회유해면인 고래바다를 가졌습니다. 여기에 장생포항이 있습니다. 국제포경위원회IWC에서 고래잡이에 대한 모라토리움Moratorium을 선언한 1985년까지 포경기지였습니다. 장생포 일대는 전국 유일의 고래문화특구입니다. 하지만 이건 그 주체인 고래들에겐 죄짓는 일입니다. 이런 환경이 저를 고래를 사랑하게 만들었습니다. 장생포에는 고래를 잡을 때보다 고래잡이가 중단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 20배나 많은 고래고기 식당이 즐비합니다. 고래를 사랑하는 일의 그 처음은, 분노에서 시작됐습니다. 고래에 대해서는 분노할 줄 알 때 뜨거운 사랑을 합니다. 울산에서, 한국에서, 아시아에서 고래를 사랑하는 일은 ‘참을 수 없는 분노’에서 시작됩니다. 여기에 우리 고래의 현주소가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제 고래보고서는 시인으로 다소 ‘감성’적이고, 고래를 사랑하는 시인으로 지극히 ‘감정’적인 보고서라는 것 또한 밝힙니다.

당신은 고래를 본 적이 있습니까? 텔레비전이나 영화, 수족관 속 돌고래가 아니라 우리나라 바다에서 고래를 본 적이 있습니까? 고래박물관의 고래모형이 아닌 살아있는 고래를 본 적이 있습니까? 비싼, 죽은 고래고기가 아닌 우리 바다에서 힘차게, 살아서 헤엄치는 고래를 직접 본 적이 있습니까? 고래의 가장 큰 매력은 장엄한 항진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나면 누구나 반하게 됩니다.

바다에서 고래는 절대 제 모습을 온전하게 다 보여주지 않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적이라는 것을 고래는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고래의 출현은 순식간입니다. 한순간의 만남, 그것만으로 사랑에 푹 빠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픈 사실이지만, 고래는 죽어서야 제 모습을 다 보여줍니다. 그물에 걸려 죽은 고래를 언론이 ‘바다의 로또’라는 ‘치 떨리는 비유’를 앵무새처럼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금액까지 밝히는 일은, 고래살상에 대해 암묵적으로 사행심을 조장하는 동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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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와 돌고래는 같지만 다른 이름입니다. 영어로는 ‘웨일Whale’와 ‘돌핀Dolphin’으로 분명히 분류됩니다. 둘 다 바다 포유류이지만, 큰 고래는 가족 단위로, 작은 돌고래는 무리지어 행동합니다. 울산에서 돌고래류는 자주 마주치지만, 고래류는 쉽게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역설이지만 고래를 가장 많이 보는 사람은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 연구원이 아닙니다. 불법포획꾼들입니다. 한 번 보기 힘든 고래를 많게는 수백 마리씩 잔인하게 잡아갑니다. 잡아서는 감시의 눈을 피해 바다에서 해체합니다. 어느 핸가 불법포획꾼들이 고래 100여 마리를 잡아 해체해 지리산 대형 창고에 보관하다 적발된 사실이 있습니다. 바다에서 살아야 할 고래가 죽어 지리산이라니! 지금 이 시간, 고래는 처참한 살육의 방식으로, 죽음의 사이렌을 울리며, 자신의 피로 바다를 붉게 적시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당신 귀에는 고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저는 고래와 돌고래를 대체로 많이 만난 편입니다. 우리 바다에 대형 고래류는 대부분 멸종상태입니다. 제 눈으로 본 고래는 10미터 정도 크기의 밍크고래가 전부였습니다. 브라이드고래는 죽은 상태에서 만났습니다. 저는 울산시가 2000년 초반에 고래문화도시를 만들기 위해 위원회를 만들었을 때 고래보호운동가의 자격으로 참여했습니다. 울산고래축제를 만드는 울산고래문화재단의 이사와 감사를 지냈습니다. 그 무렵부터 울산시가 본격 고래조사를 시작해 참여하게 됐습니다. 고래를 찾아 바다로 나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때부터 고래와 시인은 통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오영애 울산환경교육연구소 대표는 ‘울산에서 정일근 시인과 몇 번 고래조사를 함께 나갔었는데, 신기하게 시인은 고래를 가장 먼저 발견하곤 했다. 필자는 시인이 고래를 부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어딘가에 쓴 적이 있습니다. 저는 원시여서 두툼한 렌즈의 안경을 씁니다. 그런 제 눈이 고래를 발견하는 확률은 높았습니다. 고래의 발견은 ‘저기, 고래’라고 환호하는 일순간의 짜릿함입니다. 그 순간 고래는 가족을 데리고 바다 깊숙이 숨어버립니다. 그 찰나는 ‘첫사랑처럼 환호하며 찾아왔다/이뤄지지 못할 사랑처럼 아프게 살아진다’정일근 시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에서는 일입니다. 돌고래는 낫돌고래와 참고래 떼를 자주 만났습니다. 돌고래는 많게는 수천 마리씩 몰려다닙니다. 그 대형 행진의 한가운데에서 장관을 보는 일은, 동해라는 푸른 피아노를 돌고래가 건반이 돼 연주하는 열정 소나타 연주를 듣는 일입니다. 돌고래는 자신들끼리 소통하는 200여 개 언어를 가졌다고 합니다. 바다에서 돌고래 떼와 사람이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온갖 묘기를 보여주며 장난을 치며 놀리다 갑니다.

20년 전 고래를 사랑하면서부터 제가 내건 슬로건은 ‘고래는 문화다!’였습니다. 고래는 바다에 생존하는 살아있는 ‘문화 아이콘’입니다. 남북을 자유롭게 회유하는 ‘통일 아이콘’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고래가 가진 위대한 모성은 죽은 바다를 ‘생명의 바다’로 되살려줍니다. 저는 ‘고래시’를 쓰고, 노래로 만들어 보급했습니다. 2005년 국제포경위원회가 울산에서 개최됐을 때 «고래와 노래»란 한영시집을 만들어 선물했습니다. 김남조, 고은, 신경림 시인을 비롯해 한국의 대표시인 50분이 참여했습니다. 국제 엔지오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그 시집은 세계 최초의 고래시집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나라 시인들에게 고래는 통과의례가 됐습니다. 울산 해안선 155킬로미터 밖의 바다를 ‘고래바다’로 선언하고 기념비까지 세웠습니다. ‘고래를 사랑하는 시인들의 모임’을 만들어 ‘고래의 날’을 제정했습니다. 고래의 날을 기념하며 전국의 문학인을 초대해 ‘대한민국 고래문학제’를 개최해왔습니다. ‹고래와 문학›이란 무크지도 만들어 보급하고 있습니다. 장생포에 돌고래 생태체험관이 만들어지고 난 뒤 일본 돌고래 4마리가 찾아왔습니다. 돌고래들에게 한국 이름과 주소와 주민번호를 선물해 장생포 주민으로 귀화시켰습니다. 한국시인협회에 건의해 그 돌고래들에게 ‘자연시인증’을 선물하고 명예회원으로 가입시켰습니다.

이런 문화와 생태를 바탕에 둔 고래콘텐츠를 행정이 악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래의 날’이 그렇습니다. 울산 남구청의 요청으로 고래의 날 주도권을 양보했습니다. 해마다 해오던 공동기념식을 올해는 통보 없이 취소했습니다. 그래도 ‘고래를 사랑하는 시인들의 모임’은 조촐하지만 고래의 날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새 구청장이 전 구청장이 하던 고래사업을 ‘깔아뭉갠다’고 공무원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풍문으로 들었습니다. ‘고래밥상’도 그렇습니다. 고래축제에 고래고기를 판매해 20억을 투자하는 울산고래축제 여론과 평가가 좋지 않았습니다. 고래밥상이란, 고래가 좋아하는 밥상입니다. 고래축제의 이름값을 찾기 위해 미역과 울산지역 바닷물고기로 밥상을 차리자고 제안했는데, 고래고기로 만드는 고래밥상으로 변질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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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정부와 행정의 고래 죽이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묻습니다. 당신은 바다 포유류며 인간에 의해 멸종위기 상태인 고래를 환경부가 아니라, 농림수산식품부가 관리하는 것을 아십니까? 그건 정부가 바다의 꿈인 고래를 ‘생선 취급’ 하는 것입니다. 생선이라 하기에 고래는 바다의 오염으로 중금속 오염이 높은 동물입니다. 정부는 고래고기의 중금속 오염에 대해 입 다물고 있습니다. 그건 ‘너희들 알아서 처먹어라’는 대국민 욕과 같습니다. 저도 정부에 욕 좀 해야겠습니다. “젠장, 고래가 어디 시장바닥서 파는 생선입니까?” 단지 바다 생선을 좋아하는 이유로 부산시민 중금속 오염이 서울시민에 비해 3배나 높습니다. 고래고기는 12가지 맛이라 자랑합니다. 그러나 중금속까지 13가지 맛이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고래고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점점 검어지는 것을 저는 많이 보아왔습니다. 울산 남구청은 태화강과 장생포로 이원화된 고래축제 장소를 고래고기의 본산인 장생포로 몰아넣었습니다. 고래박물관은 잔인한 포경박물관이고, 생태체험관에서 돌고래를 만나고 나오는 어린아이들 눈앞에서 고래고기를 삶는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고래고기를 파는 현실은 최근 파문을 일으킨 ‘잔혹 동시’보다 더 잔혹한 동화의 한 장면입니다. 여기에 최근 장생포 고래마을을 만든 것은, 고래잡이의 추억을 되살려 결국은 우리 바다에서 포경을 재개하겠다는 ‘악의’로 읽힙니다, 저는.

또 묻습니다. 당신은 우리 바다에서 고래가 공식으로 6시간에 한 마리씩 죽어가는 것을 아십니까? 불법포획으로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고래가 죽어가는 것을 아십니까? 은밀하게 불법 거래된 고래고기들이 당신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똑같이 10개월을 임신해, 제 새끼를 출산해 미역을 먹고 젖을 불려 자식을 키우는, 우리 어머니 같은 고래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고래는 생명이며, 모성이며, 문화입니다. 도대체 대한민국은 어쩌자는 것입니까? 고래를 멸종시켜 바다를 죽이고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이 환호하는 바다의 꿈까지 모조리 멸종시키려는 겁니까? 시인 한 사람 키우지 못하는 무뇌의 바다를 만들려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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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 님은 경남대에서 시를 가르치면서 ‘고래를 사랑하는 시인들의 모임’ 대표를 맡아 고래와 더불어 사는 생명의 바다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하는 시인이다. 시집 «바다가 보이는 교실»,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방!»등을 펴냈다.

* 2015년 7/8월호 <고래와 물범의 시간들> 특집 글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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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월간 <작은것이 아름답다> http://jaga.or.kr/?p=63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