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이슬이 내려와 단풍이 아름다운, 한로(寒露)

2014년 10월 8일 | 녹색소식, 참여

찬 이슬이 내려와 단풍이 아름다운, 한로(寒露)

 

자고 나면 찬 기운이 내려와 어느새 무서리가 살짝 내려와 있습니다. 들깨, 고구마 같은 여름작물은 무서리만 와도 홀딱 삶은 듯 시들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니 봄에 뻐꾸기 울음소리가 일손을 재촉하듯, 가을이 되면 무서리가 일손을 재촉한답니다. 산비탈에 핀 구절초 꽃이 하나둘 시들어가고 양지바른 곳에 산국이 노랗고 조그맣고 노란 꽃봉오리 터트리고, 길가에 쑥부쟁이 보라꽃 무리지어 흔들리죠.

한로(寒露), 공기가 점점 차가워지고, 말뜻 그대로 찬이슬이 맺히는 때라는 뜻입니다. 24절기의 열일곱 번째 절기로 추분과 상강 사이에 들어, 오곡백과를 수확하는 시기입니다. 양력으로 10월 8일경부터 15일간인데, 옛 중국에서는 한로 15일간을 5일씩 끊어서 3후(三候)로 나눠서, ‘기러기가 초대를 받은 듯 모여들고, 참새가 줄고 조개가 나돌며, 국화가 노랗게 핀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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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초꽃>

아직도 논에 서 있는 벼는 베어지기 기다리다 목이 꺾일 지경이고, 밭에 서 있는 콩팥은 바람에도 꼬투리가 벌어집니다. 부지런히 나락 베어 털고, 콩나물콩, 메주콩, 팥을 베어 도리깨로 털고. 그것들을 다시 해에 말리며 바람 불 때 잡것을 날려 보내고 알곡을 추려야 합니다. 여기저기 분주한 들판이 펼쳐 있는 가을입니다.

단풍이 아름답게 짙어지고, 제비 등 여름새와 기러기 등 겨울새가 교체되느라 하늘을 가득매운 한로! 김장채소 재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집, 숲길을 걸으며 산천을 구경하다가 참나무 밑을 지나다 도토리를 줍고, 밤나무 밑을 찾아가 밤을 줍는 집, 시끌벅적한 마을풍경이 쌀쌀함을 이겨줍니다. 하늘은 맑고 햇살은 따스한 날, 가을걷이가 바빠도 틈틈이 겨울농사도 해야 합니다. 한로에서 상강까지 가을 파종이 제때인데, 이때 심어야 겨울이 오기 전에 뿌리를 내려 추위를 이길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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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이 시기에 국화전(菊花煎)을 지지고 국화 술을 담그는 풍습이 있답니다. 또한 한로와 상강 무렵에 서민들은 시식으로 추어탕을 즐겼습니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미꾸라지가 양기를 돋우는 데 좋다고 쓰여 있는데, 가을에 누렇게 살찌는 가을 고기라 하여 미꾸라지를 추어(鰍魚)라 한 듯합니다.

올해는 날씨가 속을 덜 썩이는 덕분에 작황이 꽤 좋습니다. 하지만 가격 폭락 때문에 풍년을 그저 반길 수만은 없죠. 게다가 얼마 전 정부의 대책 없는 쌀 전면 개방 발표와 한중FTA 협상으로 인해, 농민들의 한숨이 더욱 짙게 깔리는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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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곡식은 찬이슬에 영근다.’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한로에 접어들어 이슬이 내리면 곡식이 딴딴하게 잘 여문 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죠. 이 곡식의 이슬은 바로, 농민들이 아닐까 싶네요. 공기가 차츰 선선해짐에 따라, 어딘가에서 땀 흘리며 일하고 있을 농민들과 바쁜 현대인의 마음에도 바람이 불었으면 합니다.

오늘은 푸른 하늘 한번 올려다보며 깊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건 어떨까요?

정미경(녹색교육센터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