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녹색신년단식 비움과 나눔의 잔치

2009년 1월 19일 | 녹색단식, 활동후기

 

 오늘 그러니까 2009년 새해 1월 10일, 단식에 들어간 지 열흘 만에 처음으로 밥 같은 밥을 먹었다. 엄밀하게 말해 밥은 아니다. 뽀얀 국물에 하얀 떡살이 가지런히 끓여져 있는 맛있는 떡국, 그러니까 새해 떡국을 10일이나 지난 후에 먹은 셈이다. 부드러운 흰 떡의 나들나들 야들야들한 조직감이 입 안에서 씹히는 것이 어찌나 섬세하게 느껴지던지, 아주 조금 먹었는데도 참으로 행복한 맛이었다.

 1월 1일 새 아침, 다른 이들이 새 마음으로 떡국을 먹을 때 나는 단식 첫 날을 맞았다. 12월 31일까지는 3일 동안 해야 하는 감식이었다. 물론 감식엔 실패했다. 28, 29, 30일은 조금씩 감식을 해줘야 했는데, 해마다 단식에 임할 때마다 연말의 술자리와 밥자리를 멀리하질 못했다. 올해로 신년 비움의 단식을 하는 것이 이미 세 번째인데도 또 다시 실패. 29일까지 잘 감식하다가 30일 날 저녁에 어리석게도 소주와 맥주를 꽤 많이 마시면서 밤샘 송년회를 하고야 말았다. 단식캠프가 열리고 있는 강화도 오마이스쿨을 향해 가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겁던지. 머리도 아프고 배가 쓰리고 길은 멀고. 게다가 올해는 대학생 딸아이까지 대동하고 가는 길인데, 몸도 마음도 천근이어서 그냥 아이 끌고 집으로 되돌아와 널브러져 쉬고만 싶었다. 그러나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엔 정말 제대로 한번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병을 고치자는 것도 아니요, 다이어트 해서 살 빼겠다는 것도 아니요, 다만 일 년의 마지막과 일 년의 시작을 조금이라도 조용하게, 조금이라도 단순하게 정리하고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과, 일년 동안 몸에 쌓인 독과 잡념을 비워내고 싶은 강렬한 욕망으로 단식을 시작한 것인데, 사실 두 번의 단식이 성공적이진 않았다. 캠프에 있을 때 굶는 것은 모두 함께 하고 있으니 힘들지 않았으나, 꼭 집으로 돌아와 보식을 하게 될 때 쏟아지는 집안 행사와 아이들 밥해주는 일, 그리고 신년 인사를 겸한 술자리들 덕분에 보식을 망쳤었다.

 자, 이제는 세 번째다. 감식은 제대로 못했지만 남보다 하루 더 늦게 감식한다고 생각하자. 느긋이 생각했다. 남들 모두 인사하고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에 조금 늦게 도착해서 마지막 감식으로 미음을 먹었다. 해장국인 셈(!) 조금씩 마음도 몸도 편안해졌다. 오마이스쿨은 잠자리가 워낙 쾌적했다. 침구는 정갈했고, 방바닥은 절절 끓을 정도로 따스했다. 단식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화장실이 깨끗하고 좋은 것은 물론 샤워 룸까지 갖춰져 있었고 따스한 물도 부족함이 없었다. 사실 집보다 편안했다. 밥할 필요 없지, 일할 필요 없지, 먹을 필요 없지…

 

연만들기 삼매경에 빠진 모녀… 동점님과 너구리님

 

 이번 단식은 소금물 레몬 관장도 아니고, 마그밀 관장도 아니었다. 단식에 참가한 전원 모두 관장기를 이용한 소금물 관장을 했다. 생면부지인 사람과 짝이 되어 서로 관장을 도와주는 모습은 첫날은 어색했으나 나중엔 아주 친숙해져서 서로 서로 관장을 도와주는 흐뭇한 광경을 연출했다. 어떻게 항문으로 관장을 하느냐고, 사람들 있는 데서는 절대 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젓던 딸아이도 막상 관장할 시간이 되자, 별 소리 없이, 아니 아무 소리 없이 누워 관장에 임했다. 딸아이의 그런 태도는 남들에게 심상한 일이겠지만 나로선 감동 이상이었다. 이 아인 엄마인 내 앞에서도 트림도 거의 안하고, 방귀도 뀌지 않고, 화장실에 가는 것도 거의 모르게 조용조용 처리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단 한번도 이 딸내미가 방귀 뀌거나 트림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러니 남들 다 뒤 관장을 해도 소금물을 먹여 관장  해야 할 것이라고 예감했었다. 

 순순히 관장하던 딸은 또 별 군소리 없이 새벽 6시마다 일어나 옷을 모두 벗고 신 새벽  겨울바람에 몸을 맡기고 풍욕을 하더니 관장을 마치고는 목욕탕에서 냉, 온욕도 모두 7~8번씩 따라하며 성공리에 단식을 마쳤다. 잔소리도 없이, 투정도 없이 모든 과정을 잘 따라하는 딸 덕분이었는지 처음으로 단식하면서 하는 모든 일정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몸을 바라보는 요가, 몸을 움직이는 요가, 걷기 명상, 새해맞이 마음가짐 적어보기, 밀랍초 만들기, 면 생리대 만들기, 단식 오락관의 퀴즈 풀이까지, 춤 테라피와 책읽기까지, 아무 잡념 없이 그렇다고 어느 마음의 한 군데도 흔들리는 곳 없이 편안하게 참가할 수 있었다. 

 


전등사 뒷숲.. 정족산성 따라걷기

 중간 중간 이어지던 연 만들어 날리기와 전등사 산 위 숲 산책과 바닷가 갯벌 산책은 그야말로 단식 캠프의 백미. 이제 스무 살 이 된 딸과 함께 가오리연을 만들어 날리던 그 햇살 난만한 오후의 운동장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단식이 끝나면 먹게 될 맛있는 음식들을 떠올리며 걸어가던 숲과 바닷길의 바람을 어떻게 기억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 사이에 투명하게 비어가던 배 속과 머리 속의 느낌을 어찌 잊겠는가. 온 몸이 깨끗하게 비워져 가는 그 기쁨이라니!

 실로 단식의 재발견, 딸의 재발견, 그리고 이제 중년을 넘어가는 내 몸의 재발견의 시간이었다. 돌아오면서 강화도 속노란 고구마와 곶감 한 줄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아이는 그 길로 아이돌 가수의 콘서트를 향해 떠나고 나는 돌아와 흰쌀가루 죽을 끓였다. 한 입 한 입 오래 오래 씹어 먹었다. 아침에도 새죽을 끓여 먹고 오후엔 좀 더 걸죽하게 전복을 약간 넣어 죽을 끓여 먹었다. 새로 다니기 시작한 회사에 첫 출근 하던 날 죽을 보온병에 넣어 가서 점심 먹었고 돌아와 다시 죽을 먹고, 여하튼, 보식도 일주일 동안 죽을 먹으며 몸을 살폈다.

 이번에는 옆에서 다른 이들이 아무리 맛있는 것을 먹어도 먹고 싶다는 끈질긴 갈망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맛있겠구나, 나도 조금 먹고 싶지만, 참자. 조금만 더 지나면 나는 더 맛있게 감사하며 먹을 수 있을 테니까… 하고 생각했다. 그건 단식을 세 번이나 하면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처음 겪는 편안한 마음이었다. 먹고 싶다는, 참을 수 없다는 음식에 대한 탐심이 엷어진 기분. 고통스럽지 않은 기분. 그리고 오늘, 떡국을 먹으며, 정말 음식에 대한 담백한 감사의 마음이 떠올랐다. 먹을 수 있는 입, 소화 할 수 있는 건강, 사먹고 해먹을 수 있는 경제력까지 난 다 가지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사실 며칠 더 소식을 하고, 야채를 먹으며 보식기간을 연장하고 싶다.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이제 아구 아구 먹어치우지 말아야지, 좀 천천히 조금씩 먹어야지, 조금 먹더라도 좀 더 정갈하고 좋은 것을 먹어야지, 농사짓는 사람들의 마음도 살펴야지, 조금씩 마음을 먹어본다. 어렵지 않다. 예전부터 해야지, 해야지 할 때는 잘 안되더니, 지금, 이제는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가는 기분이다. 온 몸의 독이 관장과 단식과 죽으로, 운동으로 다 빠져나간 듯 몸과 마음이 나른하다. 이제 일에서, 사람에게서, 만남에서, 득과 실을 따지지 말 것, 그저 할 것. 몸무게를 재보니 예전 단식처럼 4~5킬로그램 빠진 것도 아니고 고작 2킬로그램 정도밖에 빠져 있지 않지만, 알겠다. 내 맘 속의 독 무게가 아마도 그 이 킬로그램이 아니었을까. 몸도 가벼워지고 마음도 가벼워진 것 같은 이 편안한 기분으로 1년을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붕붕 뜨는 행복이 아닌 고요한 평화가 이 저녁 내게 오고 있다.          

                                                                                                   권혁란(동점) – 2009 신년단식 참가자

 


비움과 나눔의 잔치에 참가한 벗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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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연꽃은 내가 발딛고 선 이곳에…

 

                                                                                                                          이숙희 (코스모스)

 

마흔에 가까이 다가선 즈음, 치열했던 30대를 추억하며 가장 물오른 빛깔의 황홀한 시간은 바로 얼마 전에 저편으로 보낸 08, 365일의 시간 이었음을 나의 깊은 곳에서는 말해주고 있었다. <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일과 경쟁으로 치닫던 시간들 속에서, 조금씩 삶의 축을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보기로 옮겨가기 시작한 서른 중반 이후로 08년 감당하기 힘들고 고통스러운 내 안의 헐 벗은 모습들과의 만남은 놀랍게도 나에게 약간의 평화와 약간의 행복과 약간의 견고함을 안겨다 주었다. 그런 08년을 보내고 다가 올 09년을 온 몸과 마음으로 맞이하기 위한 첫 선물로 강화도에서 열리는 녹색연합의 단식프로그램 비움의 잔치에 참여를 결정했다.

 

4 5일 함께할 시간 동안 비움과 내 안으로의 침묵을 생각하고 참여했던 나는 예기치 못하게 비움으로 가슴 가득 충만하게 채워지는 느낌즉 비움과 채움이라는 선물을 한아름 안고 한 겨울의 햇살 좋은 날, 강화도를 떠나왔다. 그 채움을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그곳에서 만난 서른 여명의 사람들이었다.

 


햇살과 같은 웃음을 나누는 코스모스님과 동점님

어느 곳이나 가장 힘든 것은 사람이다. 조직도 단체도 모임도.. 소위 명상, 판에 발을 담그면서 난, 그 속에서 치유 받는 것 이상으로 많은 부조리를 경험했다.

깨달았다는 스승들의 가부장제의 틀을 한 발자국도 깨지 못한 그 지독한 지식과 관념의 틀. 내 방식, 내 명상법으로 사람을 어설픈 테라피스트가 되어 진단하는 지독한 에고이스트들 가슴이 열리는 사랑과 자신의 성적 욕구에 의한 끄달림조차 구분하지 못하면서 자유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똑같은 패턴의 만나고 헤어지는 관계를 답습하는 이들. 전쟁이 나든, 누가 굶어 죽든, 명상하는 사람은 세상 것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말도 안 되는 무지와 이기주의의 씨앗들. 현실에서 밥벌이조차 해 낼 의지와 용기도 없으면서 , 돈에는 관심이 없다고 화려한 포장으로 자신을 감추는 현실도피주의자들.

 

온몸을 벗고 풍욕을 하고, 항문을 보이며 관장을 하고 함께 굶어가며 이성과 껍데기가 더 이상 통제되지 않는 극한의 싯점까지 가보면 우리는 그 사람의 좀 더 깊은 층과 만날 수 있다.

비슷한 에너지는 비슷한 에너지를 끌어들인다. “녹색연합이라는 구심점을 중심으로 모인 서른 여명의 사람들은 아름답고 따스한, 내 생각을 강요하기보다는 열린 그대로 수용하는, 따스한 손길 내밀어 세상에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그런 다양한 빛깔의 에너지를 그 자체로 품고 있었다. 그들을 통해 내 안의 허영, 내 안의 에고, 내 안의 이기주의, 내 안의 욕심을 적나라하게 추하게 될 수 밖에 없었던 4 5일의 시간이었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지옥과 천국이 공존하는 이 자본주의 삶의 현장~ 나로부터 세상과 함께하는 희망의 씨앗뿌리기가 시작될 때 그곳에서 바로 깨달음의 연꽃이 피어남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알게 해준, 녹색연합 녹색교육센터 식구들과 그 시간들을 함께 했던 아름다운 이들에게 가슴 깊은 사랑을 보냅니다. I Love You~~~  



비움과 나눔으로 4박 5일간 함께한 밝은 얼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