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읽고/ 놀밥 송송이회원

2017년 6월 9일 | 녹색소식

[웬델 베리의 삶은 기적이다를 읽고]

<삶은 기적이다> 웬델 베리 지음/박경미 옮김, 녹색평론사

3장 Ⅲ 에드워드 윌슨의《통섭》에 대하여

생태인문학책읽기모임 <놀밥> 회원 송송이

1102400060(1478)_1-ktkcokr“사람도 결국 아주 복잡한 기계일 뿐이다. 그들의 행위와 사회 제도가 아직 정의되지 않은 그 어떤 자연법칙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 <통섭>, 에드워드 윌슨/최재천.장대익, p.75

<통섭>은 5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다. 그러나 100쪽이 넘도록 결국 이 책은 같은 말을 반복해서 하고 있을 뿐인데, 그 이야기는 위의 문장 하나로 귀결된다. 즉, “인간은 정밀한 기계일 뿐이고, 세상 모든 것은 단 몇 가지의 기본적 물질로 환원되며, 세상 모든 것은 과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지난 해 코스모스 관련하여 들었던 강연에서도 과학자인 강연자는 비슷한 말을 했다. 수천년 간 철학에서 탐구했지만 알아내지 못한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 역시 과학이 답을 할 수 있다고. 인문학 위에 있는 것이 과학이며, 모든 학문이 풀지 못한 질문을 풀 수 있는 것이 과학이라고 말이다.

<삶은 기적이다>는 윌슨을 포함한 그러한 생각을 가진 과학자들의 오만에 대한 비판의 글인 동시에, 과학을 현대의 절대적 지나 선처럼 믿는 대중들에게 던지는 질문의 글이다.

세상만물은 몇 가지의 물질로 환원되고, 인간 역시 과학으로 패턴을 분석할 수 있는 기계에 지나지 않으니 그것을 대중과 모든 학자들에게 깨우치게 해야 한다는 윌슨의 계몽주의, 그리고 모든 학문은 과학으로 통합된다는 발상은 결국 3장의 3번째 챕터의 주제인 제국주의와 연결이 된다. 그것은 대항해시대 이후 끊임없이 발현되는 서양적인 사고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서양이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렇듯 타문화에 대한 이해가 현저히 떨어짐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 중 하나이다. 윌슨은 <통섭>에서 왜 현대의 과학이라는 것이, 실험을 통한 분석이라는 것이 동양이 아니라 서양에서 나타났는지에 대해 중국의 경우만 들어 아주 짧게 언급하는데 “1세기부터 13세기까지 유럽을 앞섰던 중국은 세상 만물을 창조한 인격적 신에 대한 생각을 포기함으로 정신 혁명의 길에서 한 발 뒤처지게 되고, 서양은 환원주의와 물리법칙을 통해 인간 감각을 넘어서는 시공간에 대한 이해를 얻고자 했다.”고 표현했다.

얼마나 오만한 표현인가? 동양에서는 애초에 세상 만물을 인격적 신이 창조했다고 믿지 않았다. 그네들의 기독교적 신과 동양의 신은 개념이 다르고, 세상 만물을 바라보는 방식이 다르고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다. 기독교 문화를 가진 서양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실험을 하며 분석적 이론을 발전시켰다면, 동양은 신이 아닌 인간의 존재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하고 탐구하였다. 서로 바라보는 대상이 달랐고, 이해하는 세상이 달랐다. 자연을 인격적 신이 인간을 위해 만든 하나의 세계로 이해하는 서양과 달리 동양은 그 모든 것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웬델 베리가 수없이 지적하듯 에드워드 윌슨은 본인이 모르는 것에 대해 너무 당당히 아는 척을 한다. 이미 과학이 최고의 학문이며, 그것으로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말을 한다. 그러한 대전제가 밑바탕을 이룬 후에 쓴 책은 오만하고 독선적일 뿐이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로 이 시대에도 양심적인 정신이라면, 자신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자주 고백해야 하고, 또한 세상에는 알 수 없는 것도 있다는 오래된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면서 살아야 한다.” – <삶은 기적이다> p.61

때로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이 자신이 태어나 자란 문화를 벗어나 사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한 사람이 어떤 문제의식을 갖게 되는 시작은 그 사회가 가진, 그리고 자신이 배워온 생각의 테두리 안에서일 테고, 그것을 벗어나 사고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하고. 그럼에도 자신이 그 테두리를 벗어나 모든 학문을 하나의 방식으로 통합하고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그리고 그것이 어리석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또 얼마나 우스운가? <통섭>에 대한 웬델 베리의 비판은 이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